이미지 크게보기2차병원으로 몰린 환자 전공의 집단 이탈로 대형 병원인 상급종합(3차)병원이 운영에 차질을 빚으면서 종합(2차)병원에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8일 오전 서울 시내에 위치한 2차병원 내부가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이 병원은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 직전인 지난달 18일 이후 병상 가동률과 신규 환자 내원율이 각각 약 10%포인트, 약 25%포인트 증가했다. 백동현 기자

■ ‘집단 복귀 거부’ 왜

4년전 국시 거부때도 결국 구제
정부 전방위 압박에도 동요안해
복귀한 동료 색출하며 왕따시켜
교수도 MZ세대 전공의 눈치봐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지난달 20일부터 무기한 집단 진료 거부를 하고 있는 전공의들은 정부의 행정·사법 조치 등 전방위 압박을 겁내지 않은 채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의사집단 중에서 가장 강경하게 정부에 맞서고 있다. 수술과 치료가 연기된 암·심뇌혈관 등 중증 환자의 불안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다. 전공의들이 이처럼 강경한 배경에는 정부와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적 없는 경험과 의사를 대신할 대체재가 없다는 자신감, MZ세대만의 가치관 등 복합적인 요인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에 집단 사직한 전공의 상당수는 2020년 집단휴업(파업) 당시 국가고시와 수업을 거부했던 의대생들이다. 전공의들은 면허가 정지돼도 1년 쉬거나 해외에서 취업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의사 사회에서도 실패 없이 풍족하게 성장한 세대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A 교수는 “20대 전공의들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적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는 편”이라면서 “정부가 달래거나 윽박지른다 해도 굽힐 성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자신감은 ‘의사는 불법행위를 해도 결국 정부로부터 구제받는다’는 과거 경험 탓에 배가되고 있다. 다른 직종과 달리 의사는 대체할 인력이 없고 한번 받은 의사면허증은 평생을 간다는 자신감이 이들을 동요하지 않게 한다는 분석이다.

의대 증원으로 의사 공급이 크게 늘어날 경우 전공의를 마친 뒤 높은 연봉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깨진 것도 이들을 강성으로 돌변시킨 이유로 지목된다. 전공의들은 미용 의료시장 자격 개방, 수련 의무화, 혼합진료 금지 등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 자체를 요구하고 있다. 한 상급종합병원 내과 B 교수는 “병원을 뛰쳐나간 대다수 전공의는 개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자신들은 힘들게 의사가 됐는데 앞으로는 경쟁자가 늘어 희소 가치와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실리적인 성향 탓에 고되고 연봉도 적은 필수의료를 택하는 건 불합리한 선택으로 여긴다고도 한다.

전공의들은 집단행동 과정에서 사회화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 “국민의 적개심 탓에 의사를 할 수 없다” 등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막말을 뱉어냈다. 수직적 조직 문화에서 살아온 기성 교수들과 달리 MZ세대인 전공의들은 자기주장을 표현하는 데도 거침없는 편이다. 다른 대학병원 C 교수는 “교수가 훈계를 하면 녹취하려는 경우도 많아 오히려 교수들이 눈치 볼 때도 많다”고 말했다.

현장에 남은 전공의를 색출하는 등 이견을 말하기 힘든 강압적 내부 분위기와 집단 심리 탓에 이들이 버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공의 등 2000명이 모인 한 비공개 메신저에는 “어차피 죽는 사람은 전체 환자 중에 극소수이고 극소수의 희생 따위는 언론 플레이로 덮어버리면 그만”이라며 “환자들의 불안을 이용해야 한다”란 극단적 주장마저 올라왔다.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사 업무 일부를 맡고 있는 간호사들을 향해선 “의사 파업으로 고생한다고 XX(거짓말) 치던 간호사의 최후”라는 글도 있었다.

권도경·김린아·전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