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진 국제부 차장

광신적이며 호전적인 애국주의를 뜻하는 ‘징고이즘(Jingoism)’의 유래는 18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튀르크(현 튀르키예) 전쟁 당시 러시아의 발칸반도 남하에 위협을 느낀 영국 보수당의 디즈레일리 내각은 대러 강경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영국에선 강경 정책에 편승해 전쟁 불사를 주장하는 유행가가 널리 퍼졌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싸워야 한다면 결단코(바이 징고·by Jingo) 싸울 것’이라는 노랫말이었다. 징고(Jingo)는 예수(Jesus)를 뜻하는 완곡한 표현으로, 당시 디즈레일리 내각은 이 노래에 힘입어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후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언론에서 징고이즘이란 표현을 즐겨 쓰면서 이 용어는 대외 강경론과 맹목적 애국주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이 됐다. 징고이즘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징고이즘의 망령은 약 150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촌 곳곳을 떠도는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양측 간 전쟁은 2년이 됐지만,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쟁의 본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맹목적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징고이즘의 망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인 1만 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러시아 국민 80% 이상은 여전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본질도 결국은 징고이즘이다. 양측은 신의 이름을 앞세워 죄 없는 민간인을 살상하고 있다. 특히, 중동전쟁의 전선은 신의 이름이란 명분을 타고 레바논·시리아·예멘·홍해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중동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한 이란까지 가세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팍스 아메리카나’로 불렸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리더십이 실종되자, 다른 국가와 민족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확산하는 징고이즘이 전 세계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고 본다. ‘바이 징고’를 외치는 스트롱맨들의 존재는 이런 징고이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시종일관 대만을 위협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등장도 징고이즘의 확산을 예고한다. 이들은 본인에 대한 지지가 곧 애국심이라고 강조하며 지지를 키워가고 있다. 세계 곳곳으로 퍼지는 징고이즘에 ‘두 개의 전쟁’이 ‘세 개의 전쟁’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징고이즘의 망령이 한반도에서도 자라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라며 연초부터 핵전쟁 위협까지 불사한다. ‘바이 징고’를 외치며 남침과 북핵 개발을 주도한 선대 김일성·김정일의 전철을 밟으려는 모양새다. 이런 와중에 국내 거대 야당의 대표가 ‘우리 북한’을 운운하며 김일성·김정일을 평화 지도자로 치켜세웠다. 그의 말대로 이러다가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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