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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분산기업 경영자, ‘참호’ 구축해 장기집권… ‘도덕적 해이’ 만연

  • 입력 2024-02-01 10:01
  • 수정 2024-02-0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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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선의 Deep Read - 소유분산기업 뭐가 문제인가

오너 없는 기업 CEO, 감시 시스템 유명무실화하며 ‘n차’ 연임… 美·日은 임기 단축 추세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 돕되 직접 개입 피하고… 경영진은 국가재산 관리인으로서 절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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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소유분산기업은 민영화한 회사들이긴 하지만 대개 국가기간산업 분야의 회사로 강한 공공성을 갖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1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돼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를 제도적으로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감시의 무임승차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경영 중 어느 지배구조가 바람직하고 우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가족 중심의 기업과 전문경영인 체제 기업이 병존한다.

다만 오너가 존재하면 오너의 책임경영으로 경영성과가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낫다는 실증적 연구는 다수 존재한다. 오너 직접 경영은 대리인인 전문경영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고, 그를 감시하는 데 들어가는 대리비용(agency cost)을 줄일 수 있으며, 전문경영인의 단기 실적주의를 벗어나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가치를 둘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그러나 기업이 커질수록 모든 것을 오너가 결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한국 대기업그룹조차도 하이브리드식 지배구조를 택하고 있다. 즉 지배주주가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해 오너와 전문경영의 화학적 결합으로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한 소유분산기업의 경우 이런 오너 경영의 장점을 취하기는 어렵다. 소유분산기업 측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함으로써 재벌기업의 폐해를 방지하고, 특정 대주주 없이 지분을 분산시켜왔으며, 회장 중심이 아닌 주주들의 권익을 대표할 사외이사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하여 운영해 왔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대로 기업이 운영되고 게다가 실적까지 좋다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적절하게 감시·견제할 메커니즘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감시의 무임승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참호 구축

대기업그룹 오너처럼 오래 경영권을 유지할 제도적 수단을 갖지 않은 소유분산기업의 전문경영인들이 자리를 보전하는 방식은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참호 구축 과정에서 감시·견제 시스템의 유명무실화, 경쟁자의 축출과 배제, 사외이사 회유와 포섭, 우호 주주 확보 등이 동원되기도 한다.

참호와 진지를 구축해 ‘n차’ 연임을 하고 장기집권을 이루면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해 영향력은 절대적이 된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이 임기 연장에 골몰하면 보신과 자리 나누기가 관행화하고, 이는 기업경쟁력 약화와 국가기간산업 경쟁력 훼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유분산기업은 비록 민영화한 기업이지만 업무의 내용과 성격상 강한 공공성을 갖기 때문에, 다른 사기업과는 달리 경영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런 곳에서 경영진이 참호와 진지 구축에 진력한다면 큰일이다. 오너가 존재하는 기업에서는 경영진을 교체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소유분산기업에선 그럴 수도 없다.

KT&G는 나쁜 지배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KT&G는 백복인 사장이 2015년 3월 임기 3년의 사장에 취임한 후 3연임에 성공했으나 연임 때마다 사장후보 자격 제한, 공모 기간 축소 등으로 경쟁자들을 배제해 논란을 불렀다. 그 결과 연임, 3연임 때 모두 단독 후보로 당선됐다. 경영 성과까지 좋지 않아 여론이 악화하자 백 사장은 최근 4연임 포기를 선언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 역시 참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 회장은 지난해 4월 비상경영 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내이사를 포함한 경영진 등에게 100억 원 상당 자사주를 지급해 따가운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지난해 8월엔 사외이사를 포함해 모두 16명과 5박 7일간 ‘캐나다 이사회’를 열어 거액을 쓰는 등 도덕적 해이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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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변화

소유분산기업을 놓고 제기되는 우려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배구조의 건강한 변화를 모색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과 간섭을 피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환경과 토대를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 자칫 국가의 개입은 기업의 창의와 시장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여러 소유분산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도 ‘기금 운용’이라는 원래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객관화·투명화하는 제도 개혁도 이뤄져야 정부 개입 논란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회사 내에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확실하게 작동시켜 미래의 CEO를 키워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 맥락에서 소유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장기 연임하는 것은 절제돼야 한다. 정관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두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재벌 해체를 겪은 일본의 기업들은 대부분 소유가 분산돼 있다. 일본 ‘스펜서스튜어트보드’ 지수(2022년)에 따르면 도쇼주가지수(東證株價指數·TOPIX) 100 기업의 대표이사 회장의 평균 임기는 3.9년, 대표이사 사장 또는 CEO의 평균 임기는 5년으로 조사됐다. 미국도 S&P500의 평균 CEO 재임 기간은 7.2년, CEO 재임 기간의 중앙값은 4.8년이다. 일본철강기업의 CEO 역시 길어야 5년 재직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국내 소유분산기업의 CEO와 사외이사를 포함한 임원진들은 자신이 유리 어항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국가재산의 관리인으로서 자기절제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경영의 중심 이사회

회사 경영의 중심은 이사회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CEO의 선임과 해임, 심지어는 보수까지 사실상 이사회가 결정한다. 미국 기업의 이사회는 설립자든 창업자든 경영 부진이나 실적 악화 같은 이유가 생기면 언제든 해임을 의결할 태세가 돼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을 쫓아냈던 것도 이사회였다.

국내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역시 경영의 허브인 이사회 기능 정상화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핵심은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다. 이사회 본연의 기능을 강화해 CEO를 겨냥한 강력한 내부 감시·견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세줄 요약

감시의 무임승차 :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어. 美·日에서도 오너 기업과 전문경영인 체제 기업이 병존. 소유분산기업의 문제는 경영진을 감시할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아 ‘감시의 무임승차’가 벌어진다는 점.

참호 구축 : 소유분산기업은 민영화했지만 대개 국가기간산업 분야의 회사임. 따라서 공공성을 우선시해야. 하지만 전문경영인들이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해 ‘n차’ 연임을 하고 장기 집권하려는 경향이 많아.

건강한 변화
: 결국 지배구조의 건강한 변화가 답. 정부는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피하면서 지배구조 개선을 돕고, 경영진은 자기 절제해야.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해 경영자에 대한 감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

■용어설명

‘도쇼주가지수’는 ‘닛케이225’와 함께 일본 주식시장의 양대 주가지수. TOPIX라고도 부름. 1300개 이상의 주가를 상장 주식수에 의해 가중평가한 것으로 도쿄증권거래소를 대표하는 지수.

‘소유분산기업’은 소유 지분이 분산돼 지배주주가 없는 회사. 우리·신한·하나·KB금융지주 등 금융지주회사와 KT, 포스코, KT&G 등. 민영화한 기업들이지만 강한 공공성을 지닌 회사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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