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2일 오랜 친구 신유균(왼쪽)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내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았다.

■ 자랑합니다 - 친구 신유균

몇 명 되지는 않지만 시골 중학교에서 늘 1등만 했던 친구. 대학졸업 후 친구는 카이스트를 거쳐 대기업으로, 나는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간간이 만남을 가져왔다. 1992년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각자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서울 가락동 우리 집 근처에서 가족 간에 식사를 한번 한 이후 나는 지방으로 전근하게 됐고, 서로 바쁘게 살아왔다.

사실 그간 친구의 근황을 알고 싶었지만 특별히 연락할 만한 계기가 없기도 했다. 그래도 늘 궁금하여 기업의 연말 인사 이동철이 되면 습관적으로 신문기사를 보면서 친구 이름을 찾곤 했다. 그 어느 해였던가 연말 그룹의 부장 승진 인사명단에서 친구 이름을 발견했다. 그 이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함께 회사에서 기여한 공로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년 앞서서 상무, 전무, 부사장으로 승진해 신문기사에 소개됐고, 그 외에도 연구 실적이나 반도체 산업의 비전 등의 발표기사를 보면서 내 마음속에도 큰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지만, 시쳇말로 워낙 잘나가는 친구라 생각되어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부사장에 승진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나 대단하고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었는데, 친구도 고맙다고 하면서 ‘시간이 되면 한번 보고 싶다’는 응답이 왔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난해 설 명절 무렵 퇴근하는 금요일에 시간이 되면 그의 집 근처인 분당에서 만나자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너무나 흥분되고 반가운 마음에 그 주에 바로 근무지인 인천에서 조퇴하고 단숨에 달려갔다.

친구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하면서 갔는데, 미리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순수하고 공부 잘할 것 같이 생긴, 빼빼 마른 신체에 여전히 까무잡잡하며 도수 높은 안경 너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30여 년 만에 만났는데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친구와의 첫 인연은 이러하다. 나는 안동 시내에서 약 30㎞ 떨어진 청량산 가까이에 있는 아주 작은 오지 마을에서 살았는데, 당시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 마침 내가 할머니와 오일장에 가는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학이 가능한 나이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여섯 살인데도 여덟 살인 친구들과 함께 입학하게 됐다. 1학년 때만 해도 한글이나 산수 등의 과정을 잘 따라가지 못했고, 겨우 졸업을 하게 됐다. 중학교에 입학해 당시 키가 가장 작았던 나와 친구가 단짝이 되어 철없던 중학생 시절을 시작하게 됐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나는 그저 학교에 입학만 하였지 공부가 뭔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고 교과서만 받아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친구가 수업을 들으면서 노트에 필기하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로 외우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면서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제야 공부의 맛을 알기 시작해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50명 중 125등 정도였는데 기말고사에서는 80등으로, 3학년이 되어 졸업할 때는 전교 15등 정도로 올라가게 됐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안동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친구는 큰형님이 있는 대구로 각각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됐고 친구는 재수한 후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군 생활을 제외하고는 간간이 다른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면서 추억을 쌓기도 했다.

이처럼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관계라 생각되어 늘 생각나고 보고 싶었던 친구였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이렇게나마 다시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난해 두 번의 만남 이후 올해 신년을 맞아 친구가 먼저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 지난 12일 만나게 됐다. 세계 굴지의 반도체 회사에서 30여 년을 근무하면서 부사장까지 올랐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고 하자, 친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겸손해하며 지난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친구 때문에 공부하게 된 사연, 가족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고민 등을 얘기하며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야, 세월은 참 바쁜가 보다! 세월은 바쁘지만 우리만큼은 바쁘지 않게, 다짐했던 그대로 건강하고 즐겁게 인생 살아가자!

한희도(법무부 교정본부 영월교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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