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3일 오후 6시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노후 아파트 내의 차량들이 소방차 전용구역을 침범한 채로 주차돼 있다. 박상훈 기자

■ 노후아파트 ‘소방차 진입’ 난관

서울시내 소방차 현장 도착시간
2019년 4분 → 지난해 6분대로

불법주정차 과태료 규정 있지만
2018년 이전 단지는 제재 못해
주차대란 지역주민 불안감 고조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의 한 아파트 지상 주차장은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가 넘어서자 소방차 전용구역까지 침범한 이중 삼중 주차 대란이 벌어졌다. 1971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이 없고 지상 주차 공간도 협소하다. 현행 소방기본법상 소방차 전용구역에 5분 이상 불법 주차할 경우 최대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법 개정 시행일인 2018년 8월 이전 건축허가가 승인된 공동주택은 소급적용을 받지 않아 제재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화재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거주민 박모(60) 씨는 “화재가 나면 1, 2초를 다투지 않느냐”며 “방학동 아파트 화재도 새벽에 일어났다고 하는데, 소방차 전용 공간을 침범한 차들이 많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경기 군포시 등에서 잇따른 아파트 화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소방차 진입을 지연시키는 불법 주정차 등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노후 아파트뿐만 아니라 좁은 골목에 위치한 노후 주택가도 주차된 차들로 가득해 소방차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각지대로 꼽히고 있다.

같은 날 찾은 은평구의 한 주택가는 좁은 골목에 노후 주택들이 좁게 붙어 있는 데다 거주자들의 차량까지 다수 주차돼 있었다. 해당 지역은 이러한 이유로 ‘소방차 진입·곤란 지역’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거주자 이모(59) 씨는 “사실상 소방차가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지금까지는 다행히 불이 난 적이 없지만 대부분 노인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라 불이 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차 진입 불가·곤란 지역은 지난해 6월 기준 전국에 766곳이다. 이 중 주거지역은 548곳으로 전체의 71.5%를 차지했다.

실제 불법 주차 등에 따른 소방차 진입 지연 사례는 증가하고 있다. 소방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2년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불법 주차·교통 혼잡으로 소방차의 현장 진입이 지연돼 화재가 확대된 사례는 2021년 218건에서 2022년 308건으로 증가했다. 서울의 경우 화재 신고접수 후 소방차 현장 도착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소방차가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는 평균 시간은 2019년 4분 55초에서 2023년(11월 기준) 6분 11초로 증가했다. 은평구의 경우 18분 2초로 2022년 11분 38초에 비해 55.0%, 동대문구는 14분 42초로 2022년 4분 47초에 비해 207%나 증가했다. 소방청은 화재의 ‘골든 타임’을 7분으로 정하고 있다. 강남구 역시 9분 21초로 평균 도착 시간이 골든 타임을 넘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차 도착 시간 지연은 불법 주정차, 도로 협소, 도심 내 차량 정체를 주원인으로 볼 수 있다”며 “화재 현장의 불법 주정차 차량을 강제 처분할 수 있는 법이 개정됐지만, 민원과 소송 부담이 커 현장에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는 “민원 걱정으로부터 소방관을 보호해주고 시민들이 화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소화전 사용법, 대피법에 대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율·박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