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9곳서 조단위 손실 전가
금융당국, 내부통제 소홀 판단
최고 경영진 물갈이폭 커질 듯

금융당국이 증권업계의 채권 자전거래 관행에 대해 철퇴를 가함에 따라 자산시장 침체와 함께 증권가에 불기 시작한 인사 태풍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18일 금융당국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해 5월 이후 미래에셋증권·하나증권·NH투자증권 등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자산종합관리계좌)·신탁 업무실태에 대해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이들 증권사 모두에서 운용역들이 만기도래 계좌의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고객 계좌 간 손익을 이전해온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은 이들 증권사가 손실을 본 기업어음(CP)을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돌아가면서 사주는 방식으로 계좌 원금 및 목표수익률을 달성해온 관행을 반복해 왔다며 손실 전가 금액은 모두 합하면 조 단위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금감원은 비정상적인 가격의 거래를 통해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한 행위는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관련 운용역 30여 명의 주요 혐의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랩·신탁 만기 시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의 결정 아래 고객 계좌의 CP를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사후 이익을 제공한 사례가 확인돼 최고 경영진도 대거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금감원은 만연된 불법 관행에도 최고 경영진이 내부 통제를 소홀히 했다고 보고 핵심 경영진에 대한 제재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해당 증권사들은 “일시적인 변동성으로 빚어지는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관행”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증권가의 CEO 물갈이 인사 폭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11월 29일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의 책임을 묻고 증권가 최장수 CEO로 꼽혀온 박정림 KB증권 대표·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중징계 처분을 내려 이들의 연임에 제동을 건 상황이다. KB금융지주는 지난 15일 박 대표의 후임으로 이홍구 KB증권 부사장을 추천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메리츠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은 ‘세대교체’ 등을 표방하며 이미 CEO를 줄줄이 교체하고 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