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자승 스님 머물던 요사채 ‘감식’ 전날 오후 경기 안성시 칠장사 안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숨진 가운데 과학수사관들이 30일 오전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 칠장사 화재현장서 법구 발견

언론간담회 열고 “전법에 전념”
돌연 ‘인연 스스로 끊어’ 메모
방화·살인 등 모든 가능성 수사

안성=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손기은·유승목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69) 스님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자승 스님의 극단 선택 원인을 둘러싼 의문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최근까지 언론 간담회를 갖는 등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며 강한 포교 의지를 보였는데 돌연 유서를 남긴 채 사망한 점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은 자승 스님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안성시 칠장사 요사채(승려들이 거처하는 장소) 화재 현장에 대한 감식을 하는 등 타살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30일 수사 당국에 따르면 자승 스님의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단서는 그의 유서다. 그의 승용차에서는 “칠장사 주지스님께, 이곳에서 세연(세상과의 인연)을 끝내게 돼 민폐가 많았소” “경찰분들께 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연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2장 분량의 육필 메모가 발견됐다. 하지만 그의 생전 행적으로 미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승 스님은 최근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서 강한 포교 의지를 드러내 왔다.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불교계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서는 “앞으로 10년간은 대학생 전법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지난달 31일 열린 간담회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 2027년 세계불교청년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래를 염두에 두고 활발한 행보를 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극단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방화나 방화에 의한 살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자승 스님의 유서가 직접 작성되지 않았거나 누군가의 위력에 의해 작성됐을 가능성 등 다각도로 조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승 스님은 지난 2002년과 2010년,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남북 불교 교류 활성화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수사 당국은 통신 기록을 면밀하게 확인해 자승 스님의 행적을 촘촘히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소방 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관계자 등 17명으로 구성된 합동감식팀을 꾸려 자승 스님이 입적한 칠장사 요사채에서 화재 현장을 감식했다. 합동감식팀은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현장을 확인하고, 정밀 감정이 필요한 잔해를 수집할 계획이다. 또 국과수에 시신을 보내 부검을 의뢰하고 CCTV를 분석하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다.

자승 스님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에서도 손꼽히는 행정승으로 유명하다.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은 자승 스님은 1986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을 시작으로 이른 시기부터 종단 직책을 두루 맡아 종무행정을 익혔다. 1992년 10대 중앙종회의원에 선출된 후 11대 중앙종회 사무처장을 지냈고, 12·13·14대 중앙종회의원을 맡았다. 개혁 성향의 자승 스님은 분열된 불교계를 묶을 만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으며 2009년 총무원장에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