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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옛날옛날에 심심한 사람이 있었는데
강혜숙 글·그림│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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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새롭게 쓴 작품은 전해지는 옛이야기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토끼전’의 경우 정착된 이본만 60가지를 훌쩍 넘는다. 누군가의 입으로 지금도 새 토끼전이 생성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나타나기 전부터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생성형 이야기 지능이었다.

강혜숙 작가는 “심심한 날도 즐거운 날도 이야기를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지구 맨틀에 있던 탄소 덩어리가 고열, 고온 압축을 거쳐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처럼 지상에 떠도는 옛이야기를 고도로 응축해 현대의 그림책을 만든다. 그의 손을 거치면 이미지와 서사가 응축되고 재탄생한다. 2008년 출간한 ‘수레를 탄 해’는 24절기를 알려주는 이야기로 달력처럼 책장을 위로 넘기면서 열두 개의 별을 여행하는 구조다. 책의 이미지는 만물을 포함하는 깨달음의 그림, 만다라다. 이 작품은 도쿄 메트로폴리탄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됐다. 독립된 이야기 세계인 수쿠랜드에 거주하며 자신을 수쿠 왕자라고 부르는 강 작가는 그림책으로 우리 옛이야기와 이미지를 찬란하게 전승 중이다.

이 책은 강 작가가 심심한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로 빚은 다이아몬드다. 나무꾼과 공주와 공원 벤치에 누운 도시의 할아버지와 수쿠 왕자가 토끼들과 노는 얘기다. 거북과 경주하는 토끼, 앨리스의 토끼, 동물원의 풍선 토끼가 이야기의 우물에서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놀다 보니 우주를 여행하고 심심한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난다. 이야기 밖을 드나드는 차원 이동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이 모험을 만드는 사람은 어느새 삼라만상이고, 독자 자신이다.

강 작가 만다라의 과학 소설(SF)적 진화를 보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이야기가 있는 인생은 심심할 틈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으로 휘모리장단을 치는 그림책의 마당놀이다. 당부 하나, 이 책의 띠지는 절대 버리면 안 된다. 120쪽, 1만7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