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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에도 다시 일어서며 문예의 가치 높인 ‘생활 예술가’

  • 입력 2023-08-30 08:59
  • 수정 2023-08-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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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대산(오른쪽 두 번째)이 1987년 7월 7일 충남 천안시 계성원에서 열린 세계보험협회(IIS) 서울총회에서 세계보험업계 지도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 그립습니다 - 교보생명·문고 창립자 대산 신용호(1917∼2003) <하>

사람들은 대산 신용호 창립자를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보험회사인 교보생명을 창립한 보험의 대스승, 광화문 한복판의 금싸라기 같은 공간에 교보문고를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철학을 실천한 성공한 기업인,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대산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전문적인 공익문화재단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낸 한국의 메디치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 이전에 무수한 역경과 좌절에도 끝내 다시 일어선 부도옹(不倒翁), 예술과 문화의 가치를 알고 실천한 생활예술가 그리고 제도와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눈감을 때까지 창의적으로 사유한 큰 스승으로 대산을 기억한다.

육사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중국에 간 대산은 대륙에서 포효하는 그러면서도 정직하고 신념을 잃지 않는 젊은 사업가로 성장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농산물을 싼 곳에서 사다가 비싼 곳에 가져다 파는 곡물 유통사업을 하면서도 매점매석이나 적정 이윤 이상을 탐하지 않았다. 일부러 작은 창고를 운영함으로써 유혹을 떨쳐내며 자신을 이롭게 하면서도 타인 또한 이롭게 하자는 자리리타(自利利他)를 사업철학으로 삼았다. 틈틈이 육사에게 독립운동자금을 건넸고 한편으로는 중국과 일본 청년들을 고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포용력으로 더 많은 신뢰를 쌓았고 사업 또한 번창했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과 함께 제도에 묶여 번 돈의 대부분을 찾지 못했고 그나마 쥐고 있던 재물은 귀국선을 기다리는 1년여 동안 제2귀국부장으로서 몇만 동포를 뒤치다꺼리하는 데 쓰고 빈손으로 귀국해야 했다. 귀국 후 9년 동안 출판사, 직물회사, 염직회사, 제철회사 등 여러 사업들을 꼼꼼히 준비했지만 번번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실패하였다. 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빈털터리가 되었어도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간다’는 신념과 ‘맨 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겠다’는 의지만은 잃지 않았다. 그리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피폐하고 혼돈했던 시기, 사람만이 희망이고 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임을 통찰하고 성인 남자의 담뱃값, 술값 정도를 모으면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보험을 창안한 것이다.

대산은 자신의 삶과 생각에 영향을 준 글귀를 광화문글판에 걸기 시작했다. “다시 뛰자 대한민국!”과 같은 구호성 글이 만연하던 때에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시구를 비롯해 가슴에 담아두었던 글귀들을 계절마다 시민들과 함께 나누었고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자 광화문글판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운영을 맡겼다. 문학과 미술과 국악을 사랑하고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소리 없이 도운 많은 미담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것은 대산의 창의성이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보통명사로 정의하기보다는 창의적이고 새롭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다. 광화문 교보빌딩의 외벽 색을 ‘해 질 녘 들판에서 일을 마치고 땀을 닦는 몽골 민족의 얼굴색’으로, 강남 교보타워의 외벽 색을 ‘아주 맛있게 곰삭은 붉은색’으로 명명했다는 것을 비롯한 수많은 일화들은 반복되는 일상과 낡은 틀을 깨고 끊임없이 낯선 곳을 찾아가려 한 그의 정신을 짐작하게 해준다.

생각해보면 그가 남긴 것은 교육보험도 책도 아니었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청년정신 그리고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인문정신이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이 아닌가 싶다. 영면에 든 대산 신용호 창립자의 20주기를 맞으며 가파르고 강퍅한 시대를 건너온 여전히 살아 있는 그의 청년정신이 더없이 그립다.

곽효환(시인·한국문학번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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