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차 미혼모 정수진 씨가 말하는 ‘불법입양의 유혹’

경제 · 사회적 지원 턱없이 부족
진료비 바우처 100만원이 전부
“불법유혹, 구원처럼 느껴질 수도”

공식적 절차 거친 ‘입양아’ 아닌
비공식 루트의 ‘내 자식’ 원하는
난임부부 수요 겹쳐 불법 양산

이미지 크게보기 2010년 출산 당시 생활고로 아이를 입양 보내려 했다는 미혼모 정수진(42·오른쪽) 씨가 13살 딸아이와 함께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정 씨는 “아이를 불법 입양 보낸 미혼모에게 화살을 돌리기 전에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충분한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수진 씨 제공

“당시 경제적 능력도 없고 주거지도 일정치 않았어요. 미혼모들은 사회가 자신과 아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움츠러들게 돼요. 결국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돼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저도 애를 입양 보내려고 했었어요.”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미혼모 정수진(42) 씨는 2010년 아이를 출산할 당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딸을 입양 보내려고 했다. 갓난아이를 입양기관에 넘기기까지 했지만, 도저히 아이를 떼 놓고 살 수는 없을 거 같아 부모님에게 출산 사실을 알려 도움을 구하고 아이를 다시 데려왔다. 그렇게 데려온 아이가 어느덧 13살이 됐다. 정 씨는 미혼모들이 불법 입양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미혼모에 대한 경제,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경제적 지원까지 해주겠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지금으로선 미혼모에게 그 손길이 마치 구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아’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에서도 생활고를 이유로 아이를 불법 입양 보낸 미혼모들의 사연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일 남양주 남부경찰서는 2015년 경기 남부에서 아이를 낳은 20대 A 씨를 아동매매 혐의로 수사 중이다. A 씨는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어 난임 부부에게 불법 입양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충북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 또한 2016년 인터넷으로 아이를 입양 보낸 30대 B 씨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B 씨는 출산 당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입양 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016년에는 생활고를 겪는 미혼모로부터 아이를 불법 입양한 난임 부부가 적발돼 처벌되기도 했다. 부부는 2013년 브로커에게 300만 원을 주고 친모에게 아이를 받아 키운 혐의로 기소돼 벌금 및 선고유예를 선고받았다. 당시 부부는 “불법인 줄 몰랐고, 난임으로 가질 수 없었던 둘째를 원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불법 입양이 미혼모들이 직접 아이를 낳고 키우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과 입양 기록이 없는 ‘처음부터 내 자식’을 원하는 부부들의 수요가 연결돼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입양아와 입양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난임 부부 등이 입양이라는 공식 절차가 아닌 비공식적인 루트로 아이를 찾는 경우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공 대표는 “하지만 아동 매매는 분명한 아동 학대”라며 “아동 불법 매매에 대한 공급뿐 아니라 수요를 막기 위해서는 입양에 대한 시선을 더 긍정적으로 개선하고 입양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재고해보는 등 공식 입양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혼모에 대한 지원 강화도 필요하다. 정부가 미혼모에게 제공하는 금전적 지원은 임신·출산 관련 진료비 명목의 100만 원 바우처(이용권)가 전부다. 이마저도 미혼모만을 위한 별도 정책은 아니다. 미혼모가 숙식과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여성가족부·지자체 공동운영 ‘기본생활시설’은 정원이 511명(전국 23곳)에 불과하다. 이 시설도 기본 1년, 최대 1년 6개월의 보호 기간이 정해져 있어 지속적인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조율·전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