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권경애 제명하라” 권경애 변호사 학교폭력 소송 불출석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이기철(왼쪽) 씨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열린 권 변호사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숨진 딸의 사진을 들고 제명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학폭소송 불출석’ 권경애 정직 1년… 변호사 윤리의식 도마 위

당사자 동의없이 대리인 선정
사무장 등에 명의대여해 재판
성폭력 피해-가해자 쌍방대리도

비위 드러나도 대다수 경징계
영구제명은 유사이래 단 1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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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법원의 이혼조정 사건을 맡은 한 판사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양측 변호인이 참석해 조정을 진행하는 도중에 당사자인 남편이 갑자기 출석해 “나를 대리해 출석해 있는 변호사는 내가 선임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 것이다. 진상을 파악해 보니 아내 측에서 남편 측 대리인을 임의로 선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법관은 “변호사라면 최소한 남편에게 전화해 사실관계를 파악했어야 했다”며 “변호사법에서 금지하는 쌍방 대리를 버젓이 자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인이 수임한 학교폭력 사건 피해자 대리 사건의 재판에 무단 불출석한 권경애 변호사가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정직 1년의 징계를 받은 것을 계기로, 법조계에서는 변호사들의 윤리 의식 저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회성 단순 실수가 아니라 고의성 짙은 범법 행위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전언이다.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변협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제명(5명) 징계가 4건 발생했다. 징계 건수 자체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중징계 건수가 많아진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심한 윤리 위반 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 지적하는 대표적 법 위반 사례는 명의 대여다. 변호사가 자격이 없는 사무장 등에게 명의를 대여해 줘 대신 재판을 진행하게 한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인 전직 변호사 한모 씨는 변호사 명의 대여 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의뢰인에게 수임료를 반환하지 않는 등의 비위를 저질러 2018년 8월 최초로 변협에서 영구 제명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6월에도 임모 변호사가 명의 대여를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기도 했다. 2018년에는 8명의 변호사가 사무장에게 명의를 빌려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쌍방 대리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 한 중소법무법인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대리해 합의에 이르게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비위가 있더라도 잘 드러나기 어렵고, 징계 수위가 약하기 때문에 변호사들의 윤리 위반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변호사 수 증가, 시장 경쟁 과열 등으로 비위 행위가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징계 절차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은 데다 변협의 조사 권한도 제한적이다.

징계에 착수하더라도 대부분 과태료나 견책 등 가벼운 징계에 그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권 변호사 사건의 경우에도 재판 불출석으로 당사자가 5억 원의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했을 때 정직 1년 징계는 약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건 피해자인 이기철 씨는 권 변호사의 제명 징계를 주장했다.

김무연 기자 nosmok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