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배우 류준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상설치 작품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 가상과 현실의 혼돈 속에서도 분투하는 삶을 반복하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전준호 작가

■ 스위스 ‘아트바젤’ 초대받은 문경원-전준호 작가

언리미티드 섹션서 작품 전시
17분짜리 ‘미지에서 온 소식’

바다위 떠도는 인간 생존투쟁
디지털세상 현대인 모순 담아
‘주인공 류준열’이정재가 추천

“세계 미술계·일반인도 큰 관심
내년엔 장편 영상 작업도 도전”

바젤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자들이 저희 공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보며 참 놀랍고 좋았습니다. 언어, 국가, 제도, 시스템이 달라도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명이나 안내가 아닌 은유와 추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예술의 매력이자 힘이란 믿음을 새삼 다지게 됐고요.” (문경원)

“디지털 세상에 대한 메타포를 담은 작품입니다. 종말론적 위기 상황에 있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양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상업성을 전제로 하는 아트페어에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미술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도 많이 봐 주셔서 기뻤습니다.” (전준호)

스위스 ‘아트바젤 바젤(Art Basel in Basel) 2023’ 현장에서 만난 문경원(54), 전준호(55) 작가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두 작가는 12∼18일(현지시간) 열린 아트바젤 바젤의 ‘언리미티드(Unlimited)’ 섹션에 초대받아 작품을 전시했다. 실험·독창성이 높은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언리미티드’는 세계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아트바젤 바젤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아트바젤은 프랑스 파리와 미국 마이애미, 홍콩에서도 열리지만 이 섹션은 바젤에서만 진행한다. 올해도 심사를 거쳐서 작품 76점을 선정했는데, 국내에선 듀오 작가 문경원·전준호의 영상설치작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News from Nowhere: Eclipse)’가 뽑혔다.

이미지 크게보기 문경원(왼쪽), 전준호 작가가 아트바젤 전시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웃는 모습. 장재선 선임기자

갤러리현대를 통해 출품된 이 작품은 두 작가가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한 ‘미지에서 온 소식’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이 시리즈는 기후변화 등 인류가 처한 각종 위기 상황에서 예술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것으로, 그동안 독일·미국·스위스·이탈리아·영국 등의 비엔날레와 뮤지엄 전시 등을 통해 호평을 얻었다. 이번 작품은 작년 일본 가나자와(金澤) 21세기 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것을 아트바젤 공간에 맞게 새롭게 설치한 것이다. 두 작가는 “6m 높이의 공간에 영상과 철제 그리드를 설치하느라 갤러리 스태프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17분짜리 영상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한 인간의 생존 투쟁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표면 이야기일 뿐 가상과 현실의 혼돈 속에서 삶을 반복하는 당대인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라이프 보트가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이 거기에 붙잡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작가들의 설명이다. 양쪽 벽 철제 그리드의 조명이 점멸하며 현실에서 운용되는 제도와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음향과 조도가 영상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며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다른 장르와 달리 영상은 관람 피로도가 높아서 관람객이 1분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품 완성도에 크게 신경을 썼습니다. 관객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서 주인공으로 경험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기를 바라며 디테일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두 작가의 고민이 통한 것인지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세계 각국의 미술 관계자와 수집가들이 많이 찾아와 아주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미지 크게보기 스위스 아트바젤 관객들이 갤러리현대 부스에서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를 집중해서 보고 있다. 전준호 작가 촬영

“카셀 도큐멘타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캐롤린 크리스토브 바가이예프 예술감독과 저희가 전시를 했던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의 하이케 문더 관장 등 세계적으로 활약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제롬 상스를 처음 만났는데,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동참을 제안해주시더군요.”

문 작가는 아트페어의 상업성을 의식하며 작품을 내놓은 경험이 새롭다고 했다. “아트바젤의 ‘언리미티드’를 통해 ‘리미티드’를 실험해봤다고나 할까요(웃음).” 전 작가는 “인류 위기를 다루는 우리의 작품은 초국적을 지향하지만, 아트바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며 웃었다. 그는 세계 각국 미술 애호가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특유의 유머를 섞어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문 작가는 “제가 해외에서 한국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제자들에게 자극을 준다고 해서 보람이 있다”고 했다.

두 작가는 30대 신진 시절에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을 계기로 지난 2009년부터 협업을 해왔다. 각기 서울과 부산에 살며 개인 작업을 하는 한편 공동 프로젝트를 국내외에서 꾸준히 펼쳐왔다. 두 작가의 ‘미지에서 온 소식’은 영화 제작 방식을 미술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며 특별히 주목을 받았는데, 그동안 임수정·이정재 등의 배우가 참여했다. 이정재 배우는 이번 작품에 류준열 배우를 추천할 정도로 두 작가의 프로젝트에 관심이 높다고 한다. 문 작가는 “협업 프로젝트인 장편 영상을 내년 초 촬영할 예정”이라며 “올 하반기부터 집중적으로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