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전승훈 기자

■ What - 불붙는 ‘확장현실’ 경쟁

의료 · 엔터 · 군사 등 산업 적용
2030년 8593억달러 성장 전망

메타 ‘오큘러스’ 지속적 출시
대중화 전략으로 점유율 81%
애플 ‘비전 프로’ 고급화 맞불

삼성, 구글 연합해 연말 새 제품
내년 상반기 XR 생태계 본격화

이미지 크게보기 구글 ‘카드보드’

초기 확장현실(XR·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포괄) 기기는 종이상자 형태였다. 구글이 2014년 선보인 ‘카드보드’가 원조다. 1만 원 안팎의 종이상자를 구매한 뒤 설명서대로 조립하고 스마트폰을 끼우면 XR 기기가 완성됐다. 지금 보면 허접하기 그지없지만 XR 기기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제품이었다. 기술이 부족했다기보단 당시만 해도 구글은 기기 제작에는 관심이 적었다. 구글은 카드보드를 통해 XR 기기를 빠르게 보급, 유튜브를 XR의 콘텐츠 플랫폼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강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삼성전자 ‘기어VR’

같은 해 9월 삼성전자가 메타(당시 페이스북)에 인수된 오큘러스와 협력해 ‘기어VR’을 내놓으며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했다. 카드보드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키워서 사용하는 방식이었지만 종이상자 형태의 카드보드와는 다른 완제품 형태였다.

초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스마트 기기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혁신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스마트폰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했다. 스마트폰에 ‘기어VR의 두뇌’라는 역할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후 시장은 3가지 표준을 놓고 경쟁을 시작했다. 기어VR처럼 △스마트폰을 끼워서 사용하는 방식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별도의 기기 없이 독자적으로 작동(스탠드얼론·StandAlone)하는 방식 △PC·게임기 연동 방식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을 끼워서 사용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스탠드얼론 방식은 대만의 스마트폰 업체 HTC가 주도했다.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보유한 소니는 자사 게임기와 XR 기기를 연동했다.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초기 ‘반짝’했던 XR 시장은 곧 한계에 봉착했다.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였다. XR 기기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캐즘(Chasm)’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며 3차원(D) TV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지층 사이에 생긴 큰 틈이나 협곡을 지칭하는 캐즘은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초창기 잘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져 정체 상태가 유지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미지 크게보기 메타 ‘오큘러스 퀘스트 3’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많은 업체가 명멸했지만 사실상 한 군데 업체만 살아남았다. 메타였다. 메타는 2021년 10월 기존 페이스북이었던 사명까지 메타버스를 상징하는 ‘메타’로 바꿨다. 올인 선언인 셈이다. 메타는 메타버스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X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를 꾸준히 출시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메타의 XR 기기 시장점유율은 81%에 달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애플 ‘비전 프로’

침체로 흐르던 XR 시장 분위기는 지난 5일 애플이 XR 기기 ‘비전 프로’를 선보이며 다시 기대감으로 들뜬 상태다. CNN은 “애플이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XR 분야가 라이벌 메타와 새 대결장이 됐다”고 평가했다. 양사는 이미 한 차례 신경전도 치렀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애플의 비전 프로 공개 나흘 전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9월에 정식으로 선보일 자사의 신작 XR ‘오큘러스 퀘스트3’를 미리 공개했다. ‘애플 김 빼기’로 평가된다.

다만 양사의 전략은 다소 다르다. 메타는 기존의 우월한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대중화’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반면 애플은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며 아이폰부터 이어져 온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져가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양사 제품의 출고가부터 큰 차이가 난다. 퀘스트3의 출고가는 499달러(약 63만 원)이지만 비전 프로의 출고가는 3499달러(444만 원)로 메타 신제품의 7배에 달한다.

XR 기기 새바람의 또 다른 한 축은 삼성전자다. 2018년 기어VR을 끝으로 침묵을 지키던 삼성전자는 올해 연말 새 XR 기기를 선보일 전망이다. 새 XR 기기는 퀄컴 칩셋과 구글 운영체제(OS)를 탑재해 강력한 신개념 기능을 구현한다는 것 외에는 주요 스펙이 ‘철통 보안’ 속에 가려진 상태다. 다만 협력 상대를 메타에서 구글로 변경한 점이 눈에 띈다. 제품명으론 ‘갤럭시 글래시스’ 또는 ‘갤럭시 스페이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시장에 발을 들이는 내년 상반기부터 XR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두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각종 XR 기기가 출시되면 대중에게 아직 생소한 XR 시장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스마트폰도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2010년 삼성 갤럭시 시리즈가 출시되면서 시장이 성장했는데 대형 시장 참여자가 확대될수록 성장의 트리거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415억6000만 달러였던 전 세계 XR 시장 규모는 2030년 8593억5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46.03%의 성장률이다. 프레시던스 리서치는 “예측 기간 XR 시장은 의료, 소매,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제조, 항공 우주 및 군사 등 산업에 확대 적용되며 강력한 성장을 경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