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2023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주관 기획행사인 ‘김묘선의 인연’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인 김묘선을 비롯해 출연진들이 공연을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24일 민속극장 풍류서 국립무형유산원·한국문화재재단 후원으로 열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들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지만,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합니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2023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주관 기획행사인 ‘김묘선의 인연’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인 김묘선은 이날 공연 제목 처럼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자며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해외에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자산인 700만 동포가 있다. 그들 중에는 재능과 능력있는 분들이 많다. 그들은 춤에 관심이 많고, 우리 전통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해외에 있는 전승자들은 ‘춤이 고파서’ 국가가 1년에 한 번 만이라도 불러서 공연 기회를 마련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매방 선생의 전통춤인 승무와 화랭이춤을 세계화해서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그날까지 혼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연은 김묘선발림무용단이 주최하고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문화재재단 등이 후원했으며 국악평론가 윤중강이 해설을 맡았다. 첫 무대는 국가무형문화재 이매방류 승무. 김묘선과 최경희 이인태 김기석 정현도 이석원 등이 출연해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라 할 만큼 가장 품위와 격조가 높은 승무를 유려하게 흐르는 춤의 조형적 선,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의 세계를 그려냈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묘선이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라 할 만큼 가장 품위와 격조가 높은 승무를 유려하게 흐르는 춤의 조형적 선,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승무의 호화로운 장삼놀음, 춤의 경건함을 밟아가듯 매서운 발디딤새, 그리고 가슴을 울리고 영혼마저 뒤엎어 버릴 듯 세차고 풍요하면서 멋들어진 북가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세찬 북가락이 ‘보이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들리는 춤’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

이어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살풀이춤은 고도로 다듬어진 전형적인 기방예술(奇方藝術) 로서 한(恨)과 신명(神明)을 동시에 지닌 신비한 느낌을 주는 춤이다. 특히, 김묘선의 살 풀이춤은 정적미의 단아한 멋과 함께 정과 한이 서린 비장미가 몸에 스몄다.

또 이인태의 ‘덧배기춤-신명’은 영남지역의 다양한 덧배기 춤을 바탕으로 구성한 즉흥춤으로 ‘배기고 푸는’영남 덧배기춤의 맛을 잘 드러냈으며 남성적인 멋이 흠뻑 담긴 흥겨운 민속춤이었다.

특히 노현식의 안무로 이가원 이석원이 선보인 ‘매화잠-저 꽃에 물을 주어라’는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우리 역사 속에는 선비와 기생 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산서원을 짓고 세계적인 성리학 태두인 퇴계 이황 선생과 관기인 두향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얼굴도 아름답고 거문고와 분매 솜씨가 능하였던 두향과 매화를 특별히 사랑한 퇴계 선생은 만난 지 10개월 만에 애달픈 이별을 하게 됐다. 관기 생활을 정리한 후 두향은 평생을 수절하면서 퇴계를 그리워 했다. 오로지 퇴계만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쳤다. 이날 ‘매화잠’은 같은 퇴계 이황과 두향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 불리는 거문고의 선율과 고 우봉 이매방 선생의 사풍 정감을 근간으로 구성한 작품으로 보는 이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공연을 마친 후 특별 초대된 인사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는 김묘선. 왼쪽부터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홍일송 전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회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묘선, 특별출연한 이광수.

또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이자 전라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인 송재영 명창이 특별출연한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고수 유인상)은 눈길을 끌었다.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하는 과정인데, 춘향이 술상을 차려 이도령이 한양으로 올라가 는 길목인 오리정이라는 곳에서 이도령을 기다리다 이도령이 오리정에 당도하자 둘이 이별주를 마시며 이별의 아픈 정을 나누는 슬픈 대목이지만 송 명창 특유의 유머 감각이 발휘하면서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지는 등 흥미로웠다는 평가다.

박덕상 오금 오영숙 신하얀 최지혜 등이 출연한 ‘화랭이춤’도 주목을 받았다. 경기도당굿의 모든 굿거리를 진행하는 남자 무당을 화랭이 또는 창부라고 했다. 노래를 하면 창부타령이고, 춤을추면 창부무다. 국가의 민심과 혼란을 잠재우는 국태민안 의 굿부터 마을의 안녕과 부귀를 빌어주는 축원굿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경기지역의 도달 굿의 당당하고 호탕하며 남성적 기운이 굿전체를 관통했으며 그 굿을 관장하는 화랭이의 다양한 춤사위와 가락이 돋보였다.

김묘선 선생과의 40년이 넘는 인연으로 이번 공연에 특별출연한 이광수를 비롯해 유인상 임인출 임수빈 장필립이 무대에 올린 ‘비나리’도 이광수 특유의 덕담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비나리는 ‘빌다’의 옛 명사형으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발해가 되는 여러 액살을 물리치고 순조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함과 동시에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했다. 액살을 풀어내는 살풀이, 일년 동안 드는 액을 막아 내는 액막이, 수명장수와 부귀 복덕을 비는 덕담, 축원 등으로 구성했다.

피날레는 ‘소고춤’이 장식했다. 오금 신하얀 최지혜 김선하 등이 출연해 대미를 마무리했다. 소고춤은 농악에서 채상을 돌리며 노는 소고놀이를 절제있고 토속적인 호남류의 허튼춤과 접목해 새롭게 재구성해 1989년 11월 국립국악원 원우면당에서 김묘선이 초연한 작품. 사물놀이 장단과 구성진 호적 시나위에 맞추어 추는데 특히 대삼소삼 호흡이 분명한 춤사위의 특징을 살려 호남제의 독특한 정취가 있는 춤사위로 이뤄졌다.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휘모리 등 장단을 치면서 숨을 풀어나가는 즉흥성이 돋보였다.

한편, 국가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이수자이기도 한 김묘선은 우봉 이매방 스승을 만나 전통춤을 배운 지 7년만인 1989년 승무 이수자가 됐다. 이후 일본을 무대로 활동하다 2005년 전수조교로 선정됐다. 전승교육사라는 명칭을 받기 이전부터 이미 승무를 전승하는 일에 매진해왔다. 올해는 연초부터 ‘워싱턴 김묘선 전수소’에서 제자들과 승무 이수교육을 했다. 또 이기간 워싱턴 미주한인재단이 버지니아 페어팩스고교에서 연 ‘미주 이민 120주년 기념행사’와 ‘제18회 한인의 날 기념 축전’에서 공연도 했다. 이어 남부 뉴저지로 날아가 통합한국학교 한국무용단 집중연수와 공연, 북부 뉴저지에서 승무강습과 홍보대사 임명 축하공연을 각각 올렸다. 또 재미차세대협의회(AAYC) 초청으로 한국커뮤니센터 한인동포회관에서 전통춤 무대도 선보였다. 미국에는 5곳의 김묘선 전수소가 있다. 워싱턴, 휴스턴, 뉴저지, LA, 오스틴에 이른다. 일찍이 ‘한국춤의 세계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2008년부터 미국에서 한국 전통예술 알리기에 앞장서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전수소는 일본에도 여러 곳 있다. 도쿠시마를 비롯해 오카야마, 나고야, 요코하마, 오사카까지 다섯 곳이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 서훈했으며, 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대통령상)수상, 제33회, 제40회 대한민국 국악대상을 수상했다. 또 미국 UCLA 한국음악과 교환교수 5년간 지냈고, 현재 김묘선발림무용단 총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박현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