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묘비들이 안장된 시점을 기준으로 2006년 이전 묘비와 그 이후가 크기, 내용 등에서 차이가 난다. 2006년 이전 사병묘비(앞쪽 두 번째)에 비해 신형 사병·장교 통합묘비(맨 앞)가 더 크고 기재 내용도 많으며, 글자 크기도 확대됐다. 문호남 기자

■ 크기 다른 현충원 묘비 논란

2006년 기점 구형·신형 갈려
서울·대전에 구형 7만·신형 5만개
새묘비는 1.6배 크고 상세기재

일부 유족 “사비로도 못바꾸나”
보훈처 “규격 다를 뿐 차별 아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구형’ 사병 묘비 7만3000여 개가 장교·사병을 통합한 ‘신형’ 묘비 교체 대상에서 누락된 채 장기간 방치되자 유족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구형 묘비는 장교와 사병의 구분을 없앤 통합 신형 묘비의 60% 크기이며 비석에 기재할 수 있는 글자 수도 적고, 낡고 초라하다는 것이다.

2일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서울·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묘비들은 2006년을 기준으로 구형 묘비와 신형 묘비로 나뉜다. 구형은 사병과 장교 묘비 크기에 차별을 두고 있지만, 2006년 신형 묘비가 도입되면서 사병 묘비도 기존 장교 묘비와 같은 규격이 적용됐다. 이에 일부 사병 안장자 유족들은 “묘비 차별”이라며 교체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 구형은 신형에 비해 크기가 40% 정도 작다. 국립묘지법 개정에 따라 묘비의 규격이 바뀌었기 때문인데, 신형은 79×30×13㎝ 규격에 체적 3만810㎠인데 반해 구형은 63×24×12㎝ 규격에 체적 1만8144㎠에 불과하다. 신형 묘비는 대전현충원에만 5만4942개가 있다.

구형에는 사망 사항(25자 내외)만 기재돼 있지만, 신형에는 출생 사항까지(40자 내외) 기재돼 있고 글자 크기도 더 크다. 서울현충원에 아버지를 모셨다는 유족 정모 씨는 “아버지가 나랏일 하다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서러운데 비석을 볼 때마다 이 정도밖에 취급 못 받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이들도 우리 할아버지 비석은 왜 작냐고 물을 정도”라고 말했다. 정 씨는 “내 돈 들여 바꾸겠는데도 법이 그렇다며 신형으로 못 바꾸게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 상이군인은 “2006년을 기준으로 빨리 죽으면 나쁜 비석, 오래 살면 좋은 비석을 갖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 3월 31일 유족 8576명은 ‘국립현충원 내 차별대우 받는 7만3000여 호국영령에 대한 묘비석 교체에 관한 청원’을 국민 신문고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보훈처는 “묘비 규격을 소급해 적용하는 것은 입법 정책적 문제로, 신형 묘비 교체는 관련 예산 확보 및 정책 추진의 필요성 여부 등 다각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상이군경회 관계자는 “국립영천호국원과 국립임실호국원에서는 2001년부터 신형 묘비로 교체했고, 소방 공무원 70여 기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교체된 만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시행령 등으로 충분히 개정이 가능한 데도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구형 묘비는 60~70여 년간 전사자 안장 당시의 역사를 품은 시설”이라며 “단순한 크기만으로 차별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또 “신형 묘비 규격을 소급 적용하는 규정 개정은 가능하다”며 “이미 설치된 묘비 규격을 소급 적용해 일괄 교체하는 것은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강한 기자 str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