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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박경일기자의 여행

닭발 파는 클럽·지름 50㎝ 피자… 이태원은 여전히 ‘트렌드 세터’

박경일 전임 기자
박경일 전임 기자
  • 입력 2023-05-25 09:05
  • 수정 2023-05-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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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해방촌 일대 주택가 모습. 빽빽하게 주택이 들어선 능선 너머에서 인왕산이 동네를 기웃거리는 듯하다. 마을 신을 모시는 신당인 이태원 부군당은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그 앞에서 펼쳐지는 장쾌한 전망이 더해져 ‘이태원의 명소’라 할 수 있는 곳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다시 온기 감도는 이태원 거리

봉지라면 끓이는 펍 ‘기네스 72’
노천 테이블에 앉아 ‘라맥’ 즐겨

1세대 중동 할랄 식당 ‘페트라’
순하고 옅은 향 케밥·치킨 일품

미군 인기 소주 칵테일 ‘케틀바’
브런치카페 ‘수지스’ 추억속으로

올 43년 된 클럽 ‘트웰라잇 존’
전성기땐 내·외국인 핫플 명성

한남동으로 옮겨간 ‘바다 식당’
햄·양배추 넣은 부대찌개 원조

평일 저녁 이국적 식사 즐기고
주말엔 펍에서 맥주·와인 추천


글·사진 =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코로나19의 여파에다 이태원 참사로 직격탄을 맞은 직후 급속도로 몰락했던 이태원 상권의 경기가 최근 되살아나고 있다. 아직 중심 거리인 이태원로 길가에 비어 있는 상가가 적잖지만, 사고의 충격으로 썰렁했던 이태원이 주말이면 제법 북적거린다. 참사 이후 문을 닫았던 업소들이 하나둘 문을 다시 열면서 거리의 밤 풍경도 화려해지고 있다. 슬픔과 애도로 얼어붙었던 이태원 거리에 조금씩 온기가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태원의 상권 회복을 위해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 용산구청이 함께 힘을 보태고 있다. 되살아나고 있는 이태원의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세계음식거리의 ‘단풍나무집’. 갈비와 불고기, 삼겹살 등을 파는 고깃집이다. 외국인 손님들 사이에서는 ‘메이플트리하우스’로 불린다.



#닭발을 파는 클럽이 있다고?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 맞은편 골목에 힙합 음악으로 디제잉을 하는 닭발 집이 있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그라피티 가득한 실내에 대폿집 스타일의 드럼통 테이블을 들여놓은 ‘신주 닭발 클럽’이다. ‘신주’는 ‘신이 주신’의 줄임말이란다. ‘신이 주신 닭발’이라…. 서울 홍대 앞에서 인기를 누리다가 이태원으로 넘어왔는데,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상호에 ‘클럽’이란 이름을 넣었다고 했다. 닭발을 파는 클럽이라니. 저녁 시간, 신주 닭발 클럽 안에서는 팔뚝에 문신한 젊은이들이 ‘직화무뼈닭발’ 안주 접시를 앞에 놓고 힙합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태원은 내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특별한 영역’이다. 외래문화가 집합돼 외국인이 안정감을 느끼며 소비하는 공간인 동시에, 한국 내 해외문화 소비 수요의 공간이다. 우리가 이국적이라 느끼는 곳이 외국인에게는 푸근하고 익숙한 장소가 되고, 우리에게 일상인 공간이 외국인에게는 이국적인 장소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태원은 이국적 공간과 일상적 공간이 마구 뒤섞여 있는 곳이다. 앞쪽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이국적이지만, 뒤쪽에는 도시 골목의 누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 있다. 닭발과 클럽 같은 낯선 결합은 이런 공간의 격차 사이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한다. 때로는 창의적인 유머처럼, 때로는 의표를 찌르는 농담처럼.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뒷골목은 온갖 국적의 음식점들이 늘어선 ‘세계 음식 거리’다. 이 거리에 있는 이국적인 펍 ‘기네스72’에는 라면 끓이는 기계가 있다. 이른바 ‘한강 라면’처럼 펍을 찾은 손님들이 봉지라면을 즉석 용기에 넣어 직접 끓여 먹도록 해놓은 것이다. 피자와 맥주를 ‘피맥’이라고 하듯, 손님들은 라면과 맥주를 ‘라맥’이라 부른다. 노천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기네스 맥주를 시켜놓고서 라맥을 즐기고 있다.

기네스 72의 라면 가격은 달걀 포함 6000원. 이태원에는 3배 이상 비싼 1만9000원짜리 라면도 있다. 1970년대풍 선술집 감성으로 가득한 이태원 포차 ‘버들골이야기’의 홍게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해산물과 함께 끓여서 내는 ‘홍게 해물 라면’이다. 말이 라면이지, 면보다 해물이 훨씬 더 많은 일품요리다. 이태원의 식당과 펍에서 느껴지는 건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와 재기발랄함이다. 이태원에 가면 유쾌해지는 이유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1980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43년이 된 클럽 ‘트웰라잇 존’.



#이태원의 모든 음식이 특별한 이유

외국 음식이 급속도로 대중화하면서 지금은 위세가 영 예전만 못하지만, 이태원은 1980년 후반부터 최근까지 외국 음식 전문점들이 밀집한 독보적인 지역이었다. 외국 음식점들은 해밀턴 호텔을 중심으로 이태원로 남쪽 일부와 이태원 소방서를 끼고 이슬람 성원으로 올라가는 길목 일부, 한강진 방향으로 내려가는 이태원로 남쪽 일부까지 확산했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향수를 달래는 본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시작됐다가, 점차 다양한 국적의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식당으로 발전했다.

이태원은 외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새로운 음식의 세상이다. 이태원의 외국 음식이 한국인들에게 이국적인 음식으로 소비되는 건 당연한 일. 그건 외국인과 한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에게 한식은 ‘외국 음식으로서의 한국 음식’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이태원의 식당들이 차려 내는 다양한 국적의 음식이 어떤 이들에게는 ‘고향의 음식’이면서, 또 다른 국적의 이들에겐 특별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태국 식당이나 베트남 음식점도, 프랑스 비스트로도, 스페인 타파스 바도, 인도와 무슬림 대상의 할랄푸드 음식점도 대부분 시작은 이태원이었다. 외국 음식이 내국인들에게 보편화하기 전에 가장 안정적인 소비자는 외국인이었고, 서울에서 가장 두터운 외국인 수요를 가진 곳이 이태원이었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외국 음식이 대중화하고 다변화하면서 이태원의 이른바 ‘트렌드 세터’로서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텔 밖 레스토랑이 더 고급화하면서 호텔 레스토랑이 위세를 잃은 것과 비슷한 이유다. 외국 음식점들은 이태원에서 벗어나 해방촌이나 경리단길, 한남동 등으로 확산했고, 익숙해진 외국 음식들은 동네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웬만한’ 외국 음식은 어디서든 맛볼 수 있게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태원의 음식은 흥미롭다. ‘웬만하지 않은’, 다시 말해서 대중화하지 않은 낯선 음식을 내는 식당도 있고, 본국의 음식을 완벽하게 재현하거나, 압도적인 맛을 보여주는 식당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태원의 식당에서는 낯설고 새로운 맛이나 혹은 본국의 음식과 가장 가까운 맛, 이것도 아니면 기상천외한 융합의 아이디어 혹은 위트까지 즐길 수 있다. 이를테면 ‘근사한 프로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자화장실이 있는 바’가 그런 곳들이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중동 지역의 무슬림 음식점 ‘페트라’의 케밥.



# 음식으로 더 가까워지는 중동

이태원에서 맛집 찾기는 쉽지 않다. 식당의 메뉴가 워낙 다양해 우열을 가릴 수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서 맛의 ‘기준’을 세우기 쉽지 않아서다. 이태원 맛집은 강태안 서울 가스트로 투어 대표가 추천했다. 강 대표는 다양한 기준으로 식당을 골랐다. 낯설고 이국적이지만 그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을 내는 곳과 익숙한 메뉴지만 차별화한 음식을 내는 집을 주로 골랐다. 미식의 기준이 무조건 ‘맛’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란 게 강 대표의 지론.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재료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경로를 거쳐 요리가 돼 우리 입에까지 오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음식이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익히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도 했다.

강 대표가 ‘이태원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가장 먼저 추천한 곳은 중동지역의 무슬림 음식점 ‘페트라’다. 이태원에서 20년째 영업 중인 중동 음식점이다. 이슬람 율법으로 무슬림에게 허용된 할랄 식재료만 사용하는 1세대 할랄 식당이기도 하다. 페트라의 야서 가나엠 사장은 요르단 출신으로 호주를 거쳐 한국에 영어 강사로 왔다가 눌러앉아 식당을 냈다. 시리아·요르단·레바논 등 동부 지중해 부근 국가를 통칭하는 레반트(Levant) 지역 음식이 주메뉴다.

페트라에서 맛본 건 토마토와 양파, 파슬리 등으로 만든 타볼리 샐러드와 삶은 병아리콩에 올리브 오일과 향신료를 넣어 만든 소스 홈무스, 병아리콩과 채소를 완자 모양으로 튀긴 팔라펠. 그리고 메인 요리인 양고기 시스 케밥과 페트라 스페셜 치킨이다. 음식은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순한 느낌. 향이 옅고 거부감이 거의 없다. 가나엠 사장은 납작한 피타 빵을 뜯어서 홈무스와 몇 가지 소스를 바르고 팔라펠과 샐러드를 올려 먹으라며 시범을 보였는데, ‘저마다 자유스럽게 먹는 것’이 방법인 듯했다. 생소하게 느꼈던 중동 음식의 허들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뜻밖이었다. 음식 하나로 중동 지역의 문화에 좀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외관의 일본 선술집 ‘모모의 기묘한 모험’.



#이태원 태국 식당의 역사와 내력

이태원의 음식점에서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모든 음식점이 그런 건 아니다. 특정 인종과 국적이 집중되는 음식점도 있고, 서양인이나 동양인을 가리지 않고 많은 다양한 인종의 손님들이 드나드는 식당도 있다. 이태원에서 다종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손님들이 모이는 곳은 단연 태국음식점이다. 인도 음식점과 멕시코 음식점도 비슷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태국 식당은 1996년 이태원에 문을 연 ‘타이 오키드’다. LG그룹 태국 지사장과 법인장을 지낸 한국인과 태국 방콕 고층빌딩 바이욕 스카이타워의 태국인 대표가 동업해 문을 열었다. 영업확장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동업자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2007년 식당은 두 개로 쪼개졌다. 한국인 동업자는 장소를, 태국인 동업자는 상호를 가졌다. 한국인은 그 자리에서 ‘타이가든’으로 상호를 바꿔 영업을 계속했고, 태국인은 길 건너편에 ‘타이 오키드’를 오픈했다. 타이 오키드는 결국 문을 닫았고, 타이가든은 2018년 이태원을 떠나 서울 명동성당 근처로 자리를 옮겨 성업 중이다.

강 대표는 이태원의 동남아 음식점 식당 중에 퀴논길 근처의 베트남 음식점 ‘플러스84’와 태국 음식점 ‘쏭타이’를 맛집으로 꼽았다. 퀴논길은 지난 2016년 용산구가 베트남 꾸이년시와 자매도시 교류 20주년을 기념해 부여한 명예도로 명이다. 꾸이년시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부터 1972년까지 파월 한국군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플러스84는 베트남의 국제전화 코드인 +84를 뜻한다. 강 대표가 강조한 건 베트남 할롱베이 출신인 식당 주인 남매의 성공담. 맨손으로 시작한 쌀국수집이 유명 미식 TV프로에도 나올 만큼 명성을 쌓았다. 쌀국수는 국물이 깔끔한 편. 생면을 쓴다는데 면의 맛이나 식감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바게트 빵에 고기와 당근 절임 등을 끼워 먹는 샌드위치 ‘반미’는 불 향을 입힌 돼지고기와 바삭한 바게트의 맛이 잘 어울렸다.

플러스84가 대중적 느낌의 베트남 식당이라면 쏭타이는 고급스러운 태국식당이다. 선베드와 파라솔까지 갖춘 옥상의 루프톱은 휴양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쏭타이의 인기 메뉴는 달달한 맛의 볶음 국수 팟타이. 여기다가 수박주스 ‘땡모반’을 곁들이는 게 단골들의 주문법이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미국 스타일 타코를 내는 ‘바토스’의 타코.



#만두와 피자, 그리고 타코

이태원을 대표하는 만두집은 ‘쟈니덤플링’이다. 중국 베이징(北京) 스타일인 이곳의 만두는 피가 두껍고 큰데, 소에 돼지비계를 넣지 않아서 느끼한 맛이 덜하다. 이곳의 인기메뉴는 ‘군만두 반달’. 팬에 물을 붓고 녹말가루를 푼 뒤에 만두를 넣고 찌듯이 굽는다. 팬 바닥의 녹말가루가 만두에 달라붙어 바삭바삭하게 익는데, 만두 아래쪽은 군만두 특유의 바삭한 맛이, 만두 위쪽은 촉촉한 찐만두의 식감이 느껴진다.

이태원에는 피자집이 많다. 강 대표는 그중에서 미국 피자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낸 곳으로 ‘매덕스피자’를 꼽았다. 미국식 피자의 특징은 ‘크고 기름진 맛’. 토마토에 오레가노와 올리브유 등 각종 재료를 듬뿍 첨가하고, 토핑을 소시지와 페퍼로니, 베이컨 등 고기 위주로 풍성하게 올린다. 매덕스의 피자는 지름이 50㎝가 넘는 초대형. 피자마다 치즈·시금치·베이컨·맥앤치즈 등 토핑 한가지가 흐드러지게 올라간다. 매덕스 피자를 더 유명하게 한 건 ‘미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장’이다. 초창기에 미국에 가본 적 없는 사장이 만든 ‘가장 미국적인 피자’라는 입소문에 힘입어 금방 이태원 대표 맛집 대열에 올랐다. 페퍼로니 피자와 스페인 소시지인 초리소를 올린 초리소 피자가 강 대표가 강력 추천하는 메뉴다.

미국식 타코를 내는 ‘바토스’는 이태원에서 내로라하는 인기 식당이다. 재미교포 1.5세 3명이 모여서 2011년 창업한 식당이다. 미국 거주 시절 자주 먹던 타코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없어 아예 식당을 차렸는데, 이른바 ‘대박’이 났다. 이곳에서 가장 특색있는 메뉴는 김치 타코. 뭔가 외국인을 상대로 한 억지 조합 메뉴인 듯싶었는데, 먹어 보니 다른 타코보다 맛이 월등했다. 순전히 ‘맛으로’ 인기를 얻은 메뉴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가게 앞 야외 테라스 자리가 인기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미국식 바비큐 집 ‘라이너스 바비큐’ 앞에 서 있는 세계 주요 도시 이정표.



# 없어진 것들에 대한 추억

이번엔 없어진 곳들 이야기. 이태원의 전설적인 식당 중의 하나가 ‘수지스’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에서 패션마케팅과 국제회의를 공부하고 돌아와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외신 홍보담당으로 일했던 박수지 씨는 2005년 이태원에 자신의 이름을 건 뉴욕식 브런치 전문점 ‘수지스’를 냈다. 외국인 주재원이나 원어민 영어 강사 등을 타깃으로 문을 연 수지스는 내·외국인 모두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태원에서 시작한 브런치레스토랑이 서울 압구정동, 분당, 삼성동 코엑스 등 5개 분점으로 늘었고, 일본에도 두 곳의 분점을 냈다. 식당은 인기 있었지만, 무리한 확장과 자금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태원 수지스는 2016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3년 뒤인 2019년에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점까지 폐점했다. 식당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수지스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태원 외식 문화 번성의 일등공신이 미국 유학세대들의 ‘브런치 문화’였다면, 브런치 카페의 맨 앞에는 이태원의 ‘수지스’가 있었다.

식당뿐만 아니다. 1970∼1980년대 이태원에서 번성했던 내로라하는 명성의 미군 전용 클럽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당시 이태원에는 11곳의 관광전문업소가 있었다. 내국인 출입이 금지된 미군 전용 클럽인 관광전문업소에서는 면세 주류를 판매했다. 미군 전용 클럽 말고도 이태원에는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클럽도 20여 곳을 헤아렸다.

수소문 끝에 그 시절 이태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케틀바’를 운영했던 임철호(69) 씨를 만났다. ‘케틀바’란 주전자에 과일 등을 썰어 넣고 소주를 부어 만든 칵테일을 팔았던 술집이다. 저렴한 술값에다 독특한 소주 칵테일 맛에 반한 미군들이 몰려들면서 케틀바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임 씨가 들려준 그 시절 이태원 이야기 속에서 지금은 사라진 태평극장 얘기며, 이태원 클럽의 원조 격인 유엔 클럽 등의 이름이 나왔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 추모의 글이 붙어있다.



#40년 넘는 내력의 클럽과 식당

유행에 민감한 데다 불법 영업 등의 문제로 이태원 바나 클럽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곳은 거의 없다. 찾아낸 곳은 딱 한 곳. 올해로 개업 43년 된 ‘트웰라잇 존’이다. 이태원 소방서 맞은편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4층에 있는 클럽인데, 전성기에는 내·외국인 손님들이 어울려 떠들썩한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술도 마시는 곳이었다. 코로나19로 손님이 뚝 끊기면서 이 즈음은 넓은 홀에 손님이 드문드문 찾아올 뿐이다. 임차료와 수입을 생각한다면 진작 문을 닫았어야 하지만, 버틸 수 있었던 건 유원순(69) 사장이 건물주인이기 때문이다. 유 사장은 “코로나19 이후에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긴 하지만, 젊어서부터 40년 넘게 해오던 가게라 닫지 못하고 있다”며 “더 나이 들기 전에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고 했다.

트웰라잇 존에 버금갈 만한 내력을 가진 또 한 곳이 있다. 이태원에서 가까운 한남동으로 옮겨간 ‘바다 식당’이다. 1970년대 초 이태원에서 개업한 이 식당의 대표메뉴는 ‘존슨탕’이다. 햄과 소시지·양배추를 넣어 끓인 부대찌개의 원조 격이다. 모르긴 해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로 끓여낸 존슨탕은, 요즘 힙합 디제잉을 하는 ‘닭발 파는 클럽’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것이었으리라.

이태원에 즐비하던 보세 옷집도, 하루 이틀 만에 맞춤 양복을 짓던 양복점도, 귀국하는 미군들을 위한 이민 가방을 팔던 가게도, 초상화를 그려주던 거리의 화가도 이태원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 성업하던 이태원의 외국 식당도 높은 임차료와 인건비로 어려움을 겪다가 하나둘씩 술집으로 전향하는 추세다. 이태원 골목에 식당보다 바와 클럽이 눈에 띄게 늘어난 이유다.

이태원의 이런 변화는 조건에 따른 결과일 뿐 옳은 것도, 옳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도시의 공간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생물처럼 변화하는 것. 참사를 딛고 일어서는 이태원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 쉽게 단언할 수 없다.

홍유창(44)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부회장에게 지금의 이태원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물었다. 홍 부회장은 ‘20대(代)부터 30대, 그리고 40대처럼 안 보이는 40대까지’를 전제로 이렇게 답했다. 평일은 오후 7시쯤 이국적 음식으로 식사하고, 바에서 맥주와 와인을 마시다가 오후 11시쯤 클럽에서 즐길 것. 주말엔 연령 따질 것 없이 낮에 여유 있게 이태원을 둘러보고 펍에서 맥주와 와인을 맛볼 것.

photo이미지 크게보기



■ 이태원에 굿당이 있다

이태원 주택가 뒤쪽에 마을 수호신을 모시고 굿을 지내는 ‘부군당(附君堂)’이 있다. 외국인들이 북적거리는 클럽과 상가가 있는 이태원에 신당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태원 부군당은 본래 남산 하얏트 호텔 근처에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이태원 북쪽 주택가 가파른 언덕 위쪽 시야가 탁 트이는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 역사공원으로 꾸며진 이태원 부군당 앞은 전망의 명소다. 부군당 전망대에서는 경리단길과 해방촌 일대의 주택가 너머로 서울 여의도와 용산·인왕산·남산 등이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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