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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 과정서 감형 부지기수

1·2심 판결문 25건 분석 결과
반성·초범·협조·선처요청 등
정상참작사유만 60건에 달해

피해자들 평균 나이 16.8세
피해 마약은 필로폰 · 펜타닐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검찰이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미성년자 대상 마약 사범에 대해서는 최대 사형까지 구형하겠다고 나섰지만 가해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여러 사유로 감경을 받고 있다. 재판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개선되지 않으면 검찰의 ‘엄정 처벌’ 의지도 퇴색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문화일보가 최근 4년간 미성년자 대상 마약 범죄 판결문 25건을 분석한 결과, 4건 중 1건꼴인 7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형을 받은 18건 중에서도 절반 이상인 10건이 2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가장 높은 처벌은 징역 7년에 불과하다. 집행유예 판결문에 적시된 정상 참작 사유(중복 포함)는 60건에 달했다. 반성·자백 유형(19건)이 가장 많았고 △처벌 전력이 없는 점(17건) △수사협조(7건) △가족 선처 요구(6건) △일회성 투약(4건) △단약 의지(3건) △피해자의 처벌 불원(2건) △강압적이지 않은 점(2건) 등 순이다.

미성년자 대상 마약 범죄는 성범죄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고, 10대의 나이에 마약에 중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피해자 대부분 중·고등학생(평균 나이 16.8세)으로 사용된 마약은 필로폰(18건), 펜타닐(4건) 등이 대부분이었다. 두 마약은 중독성이 강하고 과다 복용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 약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9월 채팅 앱으로 만난 성인 A 씨와 모텔에서 투숙했다가 마약을 강요받았던 B(18) 양도 결국엔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 A 씨는 마약을 거부하는 B 양에게 “기분 좋으라고 하는 것이니 참으라”며 필로폰을 주사했다. 마약을 처음 접한 B 양은 환각 증세로 항거불능 상태에 놓였고, A 씨는 B 양을 간음했다. B 양의 신고로 법정에 서게 된 A 씨는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법정 처단형으로 45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실제 형량은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마약 사범들 중 집행유예 판결이 많이 나오니 사법부는 실형만 하더라도 중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성년자에게 상습적으로 마약을 제공하고 투약할 경우 법률상 사형까지 가능하고, 재판에선 가중 처벌 대상으로 양형에 반영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한 미군의 자녀인 C 씨는 2019∼2020년 사이 지속적으로 펜타닐류 마약을 매매, 수수, 사용하고 미성년자 등에게 유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반성하는 태도, 가족들의 선처 요구, 단약 의지 등을 감경 사유로 들어 C 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20년 6월 미성년자에게 필로폰을 주사하고 졸피뎀 성분의 마약을 건네는 등 5차례 이상 제공하고 성관계까지 맺은 성인 남성은 재판에서 상습성이 인정되지 않아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사법부의 처벌 인식이 높지 않은 게 근본적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2018년 채팅 앱에서 만난 18세·16세 여학생에게 필로폰을 탄 커피를 준 뒤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성인 D 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마약 전과가 3회 있고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이었다는 점이 드러나 가중 처벌 사유로 인정되고서도 중형을 피한 것이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검찰이 청소년을 상대로 한 마약 범죄에 대해 사형까지 구형하겠다고 하는데, 법원도 엄벌 기조를 받아들여 인식을 바꾸고 양형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규태 기자 kgt9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