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러시아 크렘린궁과 비트코인 이미지 합성. 게티이미지뱅크

우크라 침공 수주 전부터 러 정보기관 계좌 침투
초기엔 코인 파괴…개전 후엔 우크라 측에 이체
해킹 아니라 ‘내부 접근’… 러 관련자 가능성도




러시아의 가상화폐 지값을 파괴해 오던 정체불명의 해커집단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부터는 이들 지갑에서 털어낸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우크라이나 측에 보내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이들 해커의 행동이 의로운 것이라고 평가하며 영국의 전설적 의적에 빗대 ‘로빈 후드’ 해커라고 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뉴 보이스 오브 우크라이나’(NV)는 1일(현지시간)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와 가상화폐 분석 업체 체이널리시스를 인용해 한 해커 집단이 러시아 보안 및 정보 당국이 통제하던 가상화폐 지갑에서 훔쳐낸 비트코인을 우크라이나 측으로 이전했다고 보도했다.

체이널리시스는 이들 해커가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거래를 문서화하는 방식으로 러시아의 군 정보국(GRU), 연방보안국(FSB), 해외정보국(SVR) 등이 관리하던 것으로 986개의 가상화폐 지갑을 식별한 것으로 파악했다. 해커들은 이들 가상화폐 지갑 소유자에게 “이 지갑들은 러시아를 위해 활동하는 해커들에게 대가를 지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NV는 이 같은 분석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면서도 서방의 분석가들은 러시아 정보 당국이 수많은 공작을 실행하기 위해 해커들을 이용해 왔다는 사실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한 요원(오른쪽)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름 반도의 해군 병원에 대한 테러 공격과 연관된 러시아인을 체포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체이널리시스는 이들 가상화폐 지갑 가운데 최소 3개는 제 3자에 의해 러시아 측과 연관된 것이 맞는다고 확인했다. 3개의 지갑 중 2개는 2020년 미국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공급회사인 ‘솔라 윈즈’ 해킹 사태와 연관됐으며, 나머지 1개의 지갑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SNS를 통한 가짜 뉴스 사건과 연관됐다는 것이다.

이들 해커는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수주 전부터 러시아 측의 가상화폐 지갑을 털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초기에는 가상지갑에 침투해 단순히 가상화폐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시작한 후로는 전술을 바꿔 털어낸 가상화폐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침공을 받은 이후부터 군사적, 자선적 목적으로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가상화폐를 상용했기 때문이다. 체이널리시스 측은 기본적으로 이들 정체 불명의 해커들이 가상화폐 파괴를 멈추고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비트코인을 보내준 것으로 분석됐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들 해커가 러시아 측의 가상화폐 지갑을 탈취한 데 있어서의 특이한 점은 해킹을 사용하지 않고 내부 경로를 통해 지갑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러시아 내부 조력자의 존재도 추정되고 있다. 체이널리시스 전문가들은 “해커들이 가상화폐 지갑의 통제권을 얻은 것은 해킹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부 작업을 통한 것”이라며 “간단히 말해, 이들 해커는 러시아를 위해 일하는 해커들 사이에 잠입했거나 과거 러시아의 특수 공작에 참여했다 이후 이탈한 사람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들 해커는 러시아 측의 가상지갑에서 비트코인을 파괴할 때 ‘OP 리턴(OP_RETURN)’ 스크립트를 삽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스크립트는 비트코인 거래 검증 데이터를 무효화 하는 것을 비롯해 글과 이미지 등 비거래 관련 데이터를 비트코인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코드로 알려졌다.

박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