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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빛·예술의 혼 만나… ‘물아일체 미술관’ 들어서다

장재선 전임 기자
장재선 전임 기자
  • 입력 2023-03-21 09:04
  • 수정 2023-03-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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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제주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자리한 유동룡미술관.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제공



■ ‘자연과 합일’ 바라는 2곳 설립

‘바람의 건축가’ 유동룡미술관

끝없이 자기정체성 고민한 작가
경계속의 ‘오리지널리티’ 표현
자연-인간 공존 그린 작품 선봬

‘범섬 품은’ 박서보미술관

전체 건물 85%가량 지하에 둬
자연의 풍광 받아들이는 구조
“응어리 풀고가는 시간이 되길”


제주=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서귀포시 JW메리어트에 들어설 ‘박서보미술관’ 조감도. 기지재단 제공



“유동룡 건축가는 제주의 바람, 하늘, 땅, 바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를 기리는 미술관도 자연에 순응하며 순수한 조형을 추구했던 예술 정신과 철학을 살리는 형식과 내용으로 지었습니다.”(유동룡미술관 설계자 유이화) “미술관을 디자인하며 제주의 빛과 바람, 물을 건축물 안으로 들여오고자 했습니다. 자연을 중시하는 박서보 작가의 작품 세계를 품고, 제주와 한국의 예술에 기여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박서보미술관 설계 페르난도 메니스) 제주도에 지난해 말 유동룡미술관(이타미준 뮤지엄)이 들어선 데 이어 이번 봄에 박서보미술관이 기공식을 했다. 예술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지향하는 두 미술관은 ‘뮤지엄 아일랜드(Museum Island)’를 꿈꾸는 제주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유동룡’ ‘이타미 준’ 사이의 바람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유동룡

유동룡(1937~2011)은 ‘이타미 준(ITAMI JUN)’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재일 한국인 건축가이다.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에서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기 위해 일본식 이름을 갖긴 했으나, 어떤 일이 있어도 한국 국적을 지키라는 부모의 뜻을 받들었다.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했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성가를 높였다.

‘오리지널리티(독창성)의 힘’을 믿었던 그는 철저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건축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서예 작품 등도 만들었다.

한국을 꾸준히 여행했던 그는 제주의 자연을 특별히 사랑했다. 제주의 물과 바람, 돌을 주제로 설계한 수·풍·석 뮤지엄,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은 수작으로 꼽힌다.

그의 생애와 예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8년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이 설립됐고, 재단은 3년여의 준비 끝에 작년 12월 유동룡미술관(이타미준 뮤지엄)을 개관했다. 제주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자리한 미술관은 그의 딸인 유이화 재단 이사장이 설계했다. 아버지를 이어 건축가 길을 걷고 있는 유 이사장은 유동룡의 초기 작품 ‘어머니의 집’과 제주 초가 모습에서 착안해 자연 풍광과 어울리는 건물을 지었다.

연면적 약 700㎡, 지상 2층 규모의 미술관에는 3개의 전시실과 라이브러리, 교육실, 아트숍과 티 라운지가 있다. 첫 전시로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열리고 있다. 경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었던 유동룡의 예술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사색하도록 이끄는 전시이다.

미술관에 입장하려면 네이버 예매를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 시간당 20명, 하루 160명으로 제한돼 있다. 유 이사장은 “입장료 수입을 포기하더라도 관객들께서 여유롭게 사유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제한 이유를 설명했다.

미술관에 가기 전에 홈페이지에 있는 오디오 도슨트를 듣고 가면 좋다. 배우 문소리, 정우성, 아이돌 그룹 에스파 카리나의 음성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전시장 배경 음악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음악감독이었던 재일 한국인 음악가 양방언이 기획한 것이다. 아버지가 제주 태생인 양방언은 “유동룡 선생이 모국의 자연을 깊게 사랑한 것에 공감했다”고 했다. 그는 “제가 미술관 개관식에서 전시 배경음악을 피아노로 칠 때 유 선생이 내려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따님인 유 이사장이 울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편 유동룡미술관이 자리한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문화지구 안에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있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1929~2021) 화가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제주도가 지난 2016년 설립했다. 김 화가는 6·25전쟁 때 제주에 머무른 이후로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겼다고 한다.

◇제주 범섬을 품은 박서보 미술관

photo이미지 크게보기 박서보

김창열 화백과 평생 친구로 지냈던 박서보(91) 화백은 한국 단색화를 세계에 알린 작가이다.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을 정도로 우리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이름을 딴 박서보미술관이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있는 JW 메리어트 제주에서 지난 14일 기공식을 했다.

기공식에 참석한 박 화백은 “JW 메리어트 호텔로부터 미술관 제안을 받았을 때 무척 기뻤다”며 “아름다운 범섬이 보이는 자리여서 좋다”고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사람들이 와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가는 치유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화백은 이날 “서양 미술은 작가가 잔뜩 채워서 보는 이에게 예술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동양은 수신(修身)의 방편으로 작가가 자신을 비워서 다른 사람이 채우게 하는 것”이라는 특유의 예술철학을 강조했다.

미술관을 설계한 스페인 건축가 페르난도 메니스는 “자연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반영한 건물을 지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지상 1층과 지하 2층 규모로 짓는 미술관은 제주의 자연을 살리기 위해 건물의 85% 정도를 지하에 둔다. 전시실은 지하 2층에 위치하며 자연 빛을 받아들이는 구조로 설계됐다. 메니스는 “로비는 작가의 서울 작업실과 집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느낌을 반영해서 예술 정신을 담는 공간으로 구성하겠다”고 했다.

박 화백은 이날 자신이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처음엔 놀랐으나, 암을 친구로 삼고 작업에 열중할 것”이라고 했다. 방사선 치료 등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처럼 그림 작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에 오니 기침도 끊겼다”며 “이렇게 좋은 곳에 지어진 미술관이 내 작품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좋은 작가들도 함께 소개해서 연대성을 넓혔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박서보미술관이 지어질 서귀포에는 이중섭미술관, 왈종미술관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6·25전쟁 때 가족과 함께 제주에 머물렀던 이중섭(1916~1956)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는 미술관은 지난 2002년 개관한 이후로 관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왈종미술관은 제주에 정착한 후 자연 풍광 속의 인간을 독특한 필치로 그려 온 이왈종(77) 화백이 10년 전 설립했다. 정방폭포 근처에 있어 제주 여행객이 들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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