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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붓질하는 시대… 수공으로 예술정신 보여주겠다”

장재선 선임 기자
장재선 선임 기자
  • 입력 2023-03-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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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종 작가는 “손으로 붓을 들어 캔버스와 마주할 때 늘 설렌다”고 했다. 사진은 미술사학자 전영백 홍익대 교수가 물감이 묻은 김병종 작가의 손을 촬영한 것.



■ 서울서 6년만에 개인전 여는 김병종 작가

“고 이어령 장관의 당부 되새겨
손맛·체온 있는 작품 남길 것”

“나이 들수록 창작에너지 넘쳐”
새벽 5시면 캔버스와 정면대결

내달 20일까지 작품 40점 선봬
대부분 최근 그린 100호 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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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장 흐름이 인테리어나 단순 상품처럼 기계적 대량 생산체제로 접어든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에 맞서 수공(手工)으로 장인의 예술 정신이 깃든 작품을 내놓을 것입니다.”

김병종(사진) 작가는 특유의 담백한 어조로 말했으나 내용은 뜨거웠다. 그는 “인공지능(AI) 시대에도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손맛과 체온이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타계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그에게 “색채와 형상의 밈을 많이 퍼트려 후손에도 번성하도록 하라”고 당부했던 것을 되새겼다. 김 작가는 6년 만의 개인전이 그 유지를 받드는 것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서울 남산자락에 자리한 U.H.M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고 내달 20일까지 작품 40점을 선보인다.

“공간과 작품의 조응을 중시하는데 갤러리의 널찍한 공간이 작품들을 품어주는 형상이라 마음에 듭니다. 남산의 자연이 곁에 있는 것도 좋고요.”

이번 전시는 작년과 올해 그린 신작이 많고 대작이 주류를 이룬다. 100호(162.2×130.3㎝)가 30점이고, 200호(259.1×193.9㎝)도 6점이나 된다.

김 작가는 “나이가 들면 작은 작품을 한다는데, 저는 오히려 대작을 그리게 된다”라며 “젊을 때처럼 창작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게 신비하고 고맙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미대에서 정년 퇴임한 후, 가천대 석좌교수 등으로 활동하지만 이전보다는 창작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호인 단아(旦兒), 즉 ‘새벽 아이’답게 오전 5시쯤 작업실로 가서 맑은 정신으로 붓을 들고 캔버스와 정면 대결한다.

“어렸을 때 시골 산과 들에서 뛰놀았던 것이 창작의 뒷심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늘의 축복이죠.”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왼쪽부터 ‘화려강산’, ‘생명의 노래-화홍산수’, ‘생명의 노래-풍죽’.



이번 전시 작품 중 ‘생명의 노래’ 연작은 자연과 함께했던 유년 시절의 경험이 배어 있다. 화폭 한가운데 활짝 피어난 붉은 꽃이 주인공인 ‘화홍산수(花紅山水)’, 소나무 꽃가루가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담은 ‘송화분분(松花粉粉)’이 연작의 소주제를 이룬다. ‘화려강산’ 연작은 자연에서 뛰노는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민화풍의 해학을 전한다.

작품들을 둘러보면, 미술사학자 전영백 홍익대 교수가 김 작가에 대해 ‘자연적 서정주의’라고 했던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자연과 함께 하는 정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치유하는 기운을 주기 때문이다.

‘풍죽(風竹)’ 연작은 대숲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수천 개의 댓잎을 담은 그림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대숲의 빛을 뿜어낸다. 그 빛은 단색화처럼 각각 청(靑), 백(白), 홍(紅), 적(赤)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수많은 색을 품고 있다. 전 교수는 이 빛을 ‘심채(心彩)’라고 일컬었다. 눈이 아닌 마음에서 보이는 색이라는 뜻이다.

김 작가는 한국화의 진화를 위해 끊임없이 재료 실험을 해 왔고, 그 결과 토담이나 장판처럼 우리네 정서가 느껴지는 질감을 만들어냈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생명력, 조선 문인화의 여유, 분청사기의 색감, 민화의 해학 등을 아우른 ‘김병종 류’를 일궈왔다.

그는 “서양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에 바탕을 둬 그들의 장점을 결합한 작품 세계를 추구해왔다”며 “그것이 한국 미술이 가야 할 길임을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작년 영국 사치 갤러리가 주관한 아트페어에서 출품작 15점이 완판됐고, 올해 아트 싱가포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연말 아트바젤 마이애미에도 출품한다.

한편, 그의 고향인 남원시가 운영하는 김병종미술관은 2018년 개관한 이후 SNS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타며 지난해 관객이 8만 명을 넘었다. 이 같은 호응에 오는 9월 제2관을 개관한다. 내년 가을엔 일본, 중국 등 미술 전문가들이 그의 작품에 스민 생명력을 논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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