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美 SVB 사태에 국내영향 점검 추경호(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긴급 소집한 뒤 발언하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회의에는 최상목(왼쪽부터) 대통령실 경제수석, 김주현 금융위원장, 추 부총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참석했다. 박윤슬 기자

SVB, 벤처기업 상대 특화은행
은행개선 TF서 성공 모델 언급

전문가 “소비자 보호문제 우려
신규 허가 땐 건전성 확보 필수”
금융당국 “여론 반영 대책 모색”
계획대로 특화은행 추진 입장

이미지 크게보기

미국 기술벤처를 주요 고객으로 한 특화 은행인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하면서 국내 은행의 과점 체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금융 개혁 시도가 시작도 전에 ‘암초’를 맞았다. 금융위원회는 신규 은행 투입을 위한 해외 벤치마크 모델로 SVB를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연구해 왔으나 이번 파산으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강도 금융긴축 국면이 장기간 지속하는 상황에서 소규모 특화 은행 도입을 강행할 경우 자칫 건전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금융 당국도 우려를 반영, 한국판 SVB 사태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들어갔다.

14일 금융권 및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은행 경쟁 촉진을 위한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결성된 ‘은행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일 첫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SVB를 특화은행 도입을 위한 주요 해외 참조 사례로 검토했다. 특히 SVB를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사실상의 특화은행으로 구분했다. 또 자산 기준 미국 내 16위·실리콘밸리 내 1위 은행으로, 기술력은 있으나 경영 역량이 부족한 벤처기업에 각종 컨설팅과 행사 유치,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기업 특화 은행으로 평가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과학기술 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대덕밸리에 기반을 둔 충청권 지역은행 설립 국정과제가 SVB 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이번 SVB 파산 사태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소규모 특화 은행 추진 동력도 약화하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금융업계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새로운 은행과 금융사를 설립하도록 하려는 시도가 고금리 국면에서는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파산 사태가 여실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금리 시기에서는 은행은 부실화 위험이 커져 금융위기 가능성이 상존한다”면서 “신규 은행을 허가할 때는 충분한 재무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무작업반도 1차 회의에서 “여신이 특정 부문에만 집중된 은행은 해당 부문의 자산건전성 충격을 다른 부문의 여신을 통해 흡수하기 어려워 더 높은 수준의 자본 적정성이 필요하다”면서 “적절한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 건전성 및 소비자 보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 당국은 계획대로 추진하되, 우려를 적극 반영해 대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빚어졌다고 투자은행(IB)을 없앨 수는 없었다”며 “시중의 우려를 충분히 반영해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관범·전세원·정선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