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시의 야간 소아과 운영 방침을 비판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의료계 “소아청소년과 죽이는 정책” vs “부족하지만 지원 다행” 갈려
市 “근본적 해결위해 정부에 의료인력 확보, 수가 개선 적극 건의”

서울시가 최근 야간 시간대에 발생하는 아동 환자의 신속한 진료를 돕기 위해 야간 진료 소아청소년과에 지원금을 주는 형태의 ‘서울형 야간 소아의료체계’를 운영하기로 한 것을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소아청소년과의사들을 대표하는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나서 “차기 대선은 어림없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공개 저격하고 나섰다. 정책 방향이 잘못됐고 이를 수립해 집행하는 간부의 자질이 의심된다며 여권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오 시장의 ‘민감한 곳’을 찌른 것이다.

13일 의료계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임 회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 시장이 시민건강국장 박유미 같은 자를 내세워 소아의료 문제에 오진하고 잘못된 대책을 치료방안이라고 내놓는 한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조차 우리 아이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결코 못 막을 것”이라며 “수도 한복판에서 아이들 아픈 문제를 해결 못 하는 자가 어찌 대한민국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서울은평성모병원이 이달부터 야간 소아응급실 운영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 일부를 함께 붙여넣었다. 앞서 임 회장은 10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세훈 시장은 시민건강국장 박유미처럼 소아청소년과 죽이는 정책을 서슴치 않고 내놓는 자를 중용하는 한 대선은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날을 세우며 야간 진료 소아과에 서울시가 지원금을 준다는 기사 링크를 첨부했다.

그는 “누가 낮은 물론이고 밤 11시까지 일해야 겨우 먹고 사는 과를 전공할 사람이 있나?”라며 “오 시장 같이 현장 전문가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는 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비난했다. 임 회장의 이같은 비판에 상당수 의사가 공감을 표하면서, 좋은 취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오 시장을 향한 모양새다. 이 사안은 서울시 수뇌부에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야간 소아의료체계 운영을 주도한 박유미 시민건강국장의 근본적 자질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의사 출신이면서 같은 현장 의료인들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채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또한 보건의료정책과장·시민건강국장을 맡아오며 시민건강국에서 장기간 재직했지만 내부 직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점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 시 공무원은 “코로나19 사태때 박 국장 휘하에서 일하던 팀장급 간부 2명이 돌연 사표를 내기도 했다”며 “당시 시민건강국 전체가 정신이 없는 틈에 흐지부지됐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의사라는 자부심이 너무 강해 다른 직군 공무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융화되지 못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다수 공무원의 민원을 접수한 서울시공무원노조도 “구성원을 조직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며 박 국장을 에둘러 비판한 적이 있다.

의료인들은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전공의는 “소아청소년과 보험수가는 10년째 동결이고 의료 환경은 이미 척박해진지 오래”라며 “서울시는 돈을 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사는 “야간 진료시에 병원이나 의사 입장에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원장은 진료한다고 해도 야간 근무 직원 구하는 것도 힘들고 급여도 부담스러운 데 지원금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시의 정책이 활성화될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대학병원 소아전문응급진료센터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소아응급의료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할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에서 수가나 정원조정을 결정해 시행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 소아응급의료대책은 현장에 있는 의료진으로서 가뭄을 완전히 해결하진 못해도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에게는 지금 해줄 수 있는 단비같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아의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수가 조정·전공의 확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소아의료현장이 지금 당장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야간에 아픈 아이들이 아픈 상황에서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을 외면할 수 없는 만큼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