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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개의 비늘줄기 합쳐진 꽃… 순결·사랑 상징 ‘수태고지’성화에 등장

  • 입력 2023-03-13 09:02
  • 수정 2023-03-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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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의 ‘성수태 고지’(The Annunciation, 1914).



■ 지식카페 - 박원순의 꽃의 문화사 - (24) 백합

나비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순우리말로는 ‘나리’
아열대부터 아한대까지, 초원부터 절벽까지 널리 분포
기원전 16세기 프레스코 벽화에선 고귀한 권력·번영 의미
식용으로 쓰이지만 고양이에겐 치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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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한 아름다움과 진한 향기,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키는 아우라를 지닌 백합은 여러 문화권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약용, 식용, 관상용으로 중요하게 여겨 온 특별한 꽃이다. 한자어로 백 개의 비늘 조각이 합쳐진 알뿌리를 뜻하는 백합(百合)은 순우리말로 ‘나리’라고 부른다. 나비처럼 아름다운 꽃 또는 나물을 뜻하는 우리말에서 비롯됐다. 영명인 릴리(lily)와 속명인 릴리움(Lilium)은 모두 흰색 꽃을 뜻하는 그리스어 레이리온(leirion)에서 유래했다. 수련(water lily), 은방울꽃(lily of valley), 원추리(daylily) 등 백합과 상관없는 꽃들도 릴리(lily)라는 이름이 붙은 경우도 많은데, 꽃 모양이나 느낌이 백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반려식물로 인기인 스파티필룸도 피스 릴리(peace lily)라는 영명으로 불리는데, 꽃의 중심부에 육수 꽃차례 주위를 감싸고 있는 백합처럼 새하얀 불염포를 가지고 있다.

백합은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유럽 등 주로 북반구에 백여 종이 분포한다. 필리핀 같은 아열대 지역부터 캄차카반도 같은 아한대 지역까지 기후대의 범위도 넓고, 숲 가장자리부터 습한 절벽, 고지대 초원까지 서식 환경도 다양하다. 백합의 꽃은 보통 여섯 갈래로 나뉜 꽃잎 같은 꽃덮이조각(tepal)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과감하게 돌출된 암술대 주변으로는 수북하게 꽃밥을 매단 여섯 개의 수술들이 여왕을 보호하는 근위병들처럼 둘러싸고 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인류 문명과 함께하며 각자 고유의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해 온 것은 원래 야생에 자랐던 백합 원종들이다. 그 중 가장 오랫동안 재배되며 중요한 상징적 가치를 지녀 온 백합은 ‘마돈나 백합’(Madonna lily)이라 불리는 릴리움 칸디둠(L. candidum)이다. 원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지역 산악지대와 건조한 암반 서식지에 자라던 이 꽃은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발칸과 중동 지역 등 지중해 동부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과 북아프리카, 카나리제도, 멕시코로 귀화했다. 높이 자라는 꽃대 끝에 순백색으로 달리는 마돈나 백합의 꽃잎은 뒤쪽으로 살짝 젖혀 있으며 매우 향기롭다. 마돈나 백합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은 19세기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 경이 크레타섬에서 발굴한 크노소스 궁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16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레스코 벽화에는 곳곳에 마돈나 백합이 등장한다. 고귀한 권력을 상징하듯 왕관에 묘사되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성장과 번영, 다산과 수확을 상징하는 미노아의 여신 아리아드네(Ariadne)를 숭배하는 꽃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치며 마돈나 백합은 숭고한 사랑과 출산을 상징하며 결혼 의식을 치르는 신부의 화환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이후 6세기 비잔틴 교회에서는 변모하는 그리스도의 천국을 묘사하는 그림 속에 등장했으며, 9세기 초에는 샤를마뉴 대제의 ‘도시에 관한 법령집’(Capitulare de villis)에서 권고한 백 가지 식물 목록 가운데 포함되었다. 비슷한 시기 수도사 발라프리드 스트라보(Walafrid Strabo)는 뱀에 물린 상처 치료에 쓸 수 있는 마돈나 백합이 순수한 신앙을 의미한다고 했다. 12세기 시칠리아의 몬레알레 대성당 모자이크에 묘사된 창세기 셋째 날 장면 속에서 바다와 육지가 생겨나며 창조된 나무 아래에도 백합이 그려졌다. 가톨릭 교회에서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미술 작품 속에 마돈나 백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초기였다. 1440년경 이탈리아의 화가 파올로(Giovanni di Paolo)는 대천사 미카엘에 의해 천국으로부터 추방되고 있는 아담과 이브를 그렸는데 그림 속 천국에는 백합을 비롯하여 장미, 카네이션, 석류가 있었다. 마돈나 백합의 위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수태고지’(The Annunciation, 1472∼1475) 그림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림 속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리며 세 송이 꽃으로 피어난 마돈나 백합을 전하고 있다. 이 꽃은 또한 성 요셉, 파도바의 성 안토니아, 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자 같은 순결한 성인들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렇게 마돈나 백합은 순수와 순결, 동정녀 마리아, 성직자의 순교, 무고한 어린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크노소스 궁전의 백합 프레스코화(기원전 1570∼1470년,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크레타섬).


이미지 크게보기 당나리(Lilium brownii var. viridulum),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프리실라 수전 버리(Priscilla Susan Bury)의 1870년 이전 작품.



여러 종류의 백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식물 탐험가들을 통해 많은 새로운 종들이 도입되었다. 특히 독일인 의사이자 생물학자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가 릴리움 아우라툼(L. auratum), 릴리움 스페키오숨(L. speciosum) 등 주요 백합 종류들을 유럽으로 도입해 새로운 교배종 육종에 불을 지폈다. 19세기 중반 무렵엔 미국에서도 보스턴을 중심으로 백합 육종가들이 활약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많은 백합 품종들이 탄생했다. 가장 성공적인 백합은 ‘부활절 백합’이라 불리는 릴리움 롱기플로룸(L. longiflorum)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백합이라 부르는 종류가 바로 이 꽃이다. 대만과 일본 류큐(琉球) 제도 원산으로 바깥을 향해 피는 나팔 모양의 흰색 꽃은 향기가 좋다. 미국 오리건주의 루이스 휴톤(Louis Houghton)이 일본에서 이 백합을 도입하여 부활절 무렵에 개화하는 꽃꽂이용 절화로 대량 재배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백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입이 차단되어 매우 귀해졌다. 대신에 아메리칸 계통의 백합이 크게 성공하여 수많은 백합 재배가들이 서부 해안을 따라 성행하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부활절 백합은 캘리포니아 북서부와 오리건 남서부 해안 저지대에서 생산되고 있다.

백합에 대한 인류의 오랜 사랑과 관심 덕택에 오늘날엔 정원용으로 개발된 수천 종류의 재배품종들을 볼 수 있다. 줄기 하나에 꽃 한 송이 만 피는 단성 꽃차례를 비롯해 총상 꽃차례, 원추 꽃차례, 산형 꽃차례 등 꽃의 배열도 다양하다. 꽃이 피는 방향도 제각각이어서 위를 보는 꽃, 옆을 보는 꽃, 고개를 떨구고 아래를 보는 꽃이 있고, 꽃 자체의 생김새도 컵 모양, 그릇 모양, 종 모양, 트럼펫 모양, 깔때기 모양, 납작한 모양, 별 모양이 있다. 꽃덮이조각은 아무 무늬도 없이 깔끔한 종류도 있지만, 반점, 줄무늬, 브러시 자국, 심지어 돌기가 있는 종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백합 종류들을 좀 더 쉽게 분류하고자 아시아틱(Asiatic), 마르타곤(Martagon), 칸디둠(Candidum), 아메리칸(American), 롱기플로룸(Longiflorum), 트럼펫(Trumpet), 오리엔탈(Oriental) 등 9개 계통으로 나눈다. 작은 키에 위쪽을 향해 피는 아시아틱 교배종은 다채롭고 선명한 색깔로 화분 재배용이나 정원용으로 인기가 많지만 향기는 없다. 꽃이 땅을 보며 피는 릴리움 마르타곤(L. martagon)에서 유래한 마르타곤 교배종은 꽃이 뒤로 완전히 젖혀져 터키 모자(turk’s cap) 같은 모양이다. 마돈나 백합 등 유럽 종들로부터 유래한 칸디둠 교배종도 있고, 북아메리카 종들로부터 유래한 키 큰 아메리칸 교배종은 군락을 형성하며 자란다. 트럼펫 계통은 1910년경 미국 하버드대의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Ernest Henry Wilson)이 티베트와 중국 경계 지역의 한 계곡에서 수집한 릴리움 레갈레(L. regale)와 다른 아시아 종에서 유래했으며, 나팔 모양의 꽃이 특징이다. 윌슨은 이 백합을 수집하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오리엔탈 교배종은 일본에 자생하는 릴리움 아우라툼(L. auratum)을 비롯한 동아시아 종에서 유래했다. 일찍이 일본을 여행한 서양인들은 이 색다른 백합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량 재배되었는데, 1862년 영국의 식물 사냥꾼 존 굴드 베이치(John Gould Veitch)가 일본에서 이 백합을 구해 영국으로 보냈다. 바깥쪽을 향해 피는 별 모양의 순백색 꽃에 노란 줄무늬가 있고 주황색 반점들이 흩뿌려진 매우 아름답고 향기로운 릴리움 아우라툼은 ‘백합의 귀족’이라 칭송받았다.

항염, 항균, 진통 효과가 있는 백합 알뿌리는 두통, 신경통, 호흡기 질환 등 다양한 질병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물, 섬유질, 지방이 풍부하여 일본, 중국, 몽골, 시베리아에서는 식용으로 재배된 역사도 유구하다. 특히 중국에서 용의 이빨이라는 뜻의 용아백합(龍牙百合)으로 불리는 당나리(L. brownii var. viridulum)와 함께 릴리움 란시폴리움(L. lancifolium), 릴리움 다비디 우니콜로르(L. davidii var. unicolor)는 가장 중요한 3대 식용 백합이다. 하지만 백합은 스테로이드성 글리코사이드를 함유하고 있어 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이다. 고양이가 백합의 꽃가루를 조금이라도 흡입했거나 식물체 일부를 섭취했다면 급성 신부전증 같은 심각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속히 수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백합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산야에 자생하는 나리 종류를 빼놓을 수 없다. 마르타곤 계통 중에는 하늘을 보며 피는 날개하늘나리와 땅을 보며 피는 땅나리, 솔나리, 참나리, 중나리가 있고, 아시아틱 계통 중에는 옆을 보며 피는 말나리, 섬말나리 등이 있다. 이 백합들은 교잡 친화성이 높아 그간 꾸준하게 새로운 재배품종 개발을 위한 육종이 이루어져 왔는데 앞으로도 그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백합의 순수하고 깨끗한 상징성을 되새기고 거기에 우리 자생 백합의 가치를 더한다면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K-가든의 중요한 정원 식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이미지 크게보기 ⓒ박원순



■ 백합(Lilium longiflorum)

대만과 일본 원산으로 50∼100㎝ 정도 높이로 자란다. 향기가 진한 순백색의 나팔 모양 꽃을 피워 부케 등 절화용으로 인기다.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부활절 주간에 사용하는 꽃으로도 유명하다. 해가 잘 드는 남사면, 배수성이 좋은 토양이 좋으며 양지와 반그늘에서 모두 잘 자란다. 비늘줄기(bulb) 알뿌리에서 매년 새끼 알뿌리가 생겨나 번식이 이루어진다. 20세기 초 버뮤다 지역에서는 뉴욕 등지로 수출하는 부활절 백합 재배 산업이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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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건 개딸과 헤어질 결심”… 박용진, ‘이재명 결단’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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