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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체육부 차장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막을 올렸다. WBC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도한 이벤트. 지난 2006년 제1회 대회가 열렸고, 올해 5회째를 맞았다. 현역 메이저리거가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대회인 WBC는 4년마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 비유된다.

WBC는 프로기구인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한다. 하지만 대회 운영을 보면 국제대회 보편적 룰을 무시한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이 짙게 깔려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 편성이다. WBC는 공개적으로 조 추첨을 진행하는 FIFA 월드컵과 달리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최대한 지역별 안배를 하겠다는 게 메이저리그의 주장. 그러나 올해 WBC 대회 일정을 들여다보면 조 편성이 늘 미국에 너무 유리하게 ‘고안’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회 주관국인 미국은 최상의 조 편성을 받았다. 2017년 4회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노리는 미국은 멕시코, 콜롬비아, 캐나다, 영국과 함께 이번 대회 C조에 속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캐나다 외엔 뚜렷한 적수가 없다. 반면, 올해 미국의 강력한 우승 대항마로 평가된 도미니카공화국은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이스라엘, 니카라과와 죽음의 조인 D조에 편성됐다. 푸에르토리코와 베네수엘라는 빅리거들이 즐비한 야구 강국이다.

2006년 초대 대회에도 그랬다. 당시 대회 대진 방식은 본선 1조 1·2위, 2조 1·2위가 4강전을 벌이는 방식. 국제대회의 관례인 크로스 매치를 무시했다. 역시 미국의 결승 진출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또, 미국은 한국, 일본, 멕시코와 함께 1조에 편성돼 2조의 당시 우승후보였던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와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일본에 이어 1조 3위에 머물렀다. 자기 꾀에 당한 셈이다.

비단 조 편성뿐만이 아니다. 대회 장소도 철저하게 미국에 유리하다. 올해 A조는 대만 타이중, B조는 일본 도쿄, C조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D조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1라운드를 진행한다. 각 조 2위까지 8강에 오르며 A조와 B조의 8강 진출국은 도쿄에서, C조와 D조에서 8강에 오르면 마이애미에서 일전을 치른다. 8강 일정 종료는 19일. 준결승전(20∼21일)과 결승전(22일)은 마이애미에서 열린다. 4강에 오른 팀의 경우, 준결승까지 여유 시간은 단 나흘. 미국 대표팀은 미국 내에서만 이동할 수 있다. 애리조나와 플로리다의 시차는 2시간이다.

반면 B조에 속한, 2006년과 2009년 4강에 올랐던 아시아 야구 강국인 한국과 일본에 너무 불리하다. 긴 이동 거리에 시차 적응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구는 여전히 한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중미 일부, 일본, 대만 등 몇 나라에서만 성행하는 지역 스포츠다. WBC는 ‘야구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야심 차게 준비한 대회다. 하지만 미국의 횡포가 계속되면서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정당당한 승부의 세계에서 ‘꼼수’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최고의 자리에 다시 오른다고 해도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