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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캠페인의 성공을 떠받친다. 특히 슬로건은 선거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후보 캠프가 만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이다. 클린턴은 유권자의 관심을 잘 녹여낸 이 슬로건을 내세워 마침내 대권을 거머쥐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됐던 선거 슬로건으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꼽을 수 있다.

슬로건은 선거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건강과 안전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폐암으로 숨진 국민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병상에서 남긴 말을 빌려 제작한 금연 광고 “담배 맛있습니까? 그건 독약입니다”와 그 뒤 나온 “노담이면 좋겠어”란 금연 캠페인 슬로건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아 있다. 중대재해 등 산업재해 예방 캠페인에서도 슬로건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동안 광고 등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낯익은 슬로건은 “조심! 조심! 코리아”와 최근의 “안전은 권리입니다”이다. 이런 슬로건들은 시대 변화와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 등과 맞물려 새롭게 바뀌어 왔다.

새 정부 들어서 일터의 안전보건을 안전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안전보건 슬로건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맞게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과거 산재(産災) 예방 슬로건 가운데 ‘조심! 조심! 코리아’는 근로자의 부주의나 실수를 줄이면 산재를 대폭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오도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터에서 산업재해 예방의 핵심 주체는 사업주인데도 근로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문구라는 지적이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안전은 권리입니다’라는 슬로건이다. 작업 도중에 긴박한 위험이 감지됐을 때 근로자들에게 작업 중지 요구권을 부여한 것이 바로 이런 슬로건의 정신을 반영한 것에 해당한다.

우리는 ‘안전은 권리’를 최근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외쳐 왔다. 하지만 일터에서 중대재해 등 산재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정체 상태이거나 때로는 늘어나기도 했다. 이 슬로건은 산재 예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주체인 사업주의 의무를 담지 못하고 있다. 또, 산재 발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책임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근로자의 의무도 빠져 있다. 새롭게 만들 산재 예방 슬로건에는 기존 슬로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사업주는 물론이고 근로자·정부·국민이 함께 참여해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어야 한다. 사업주와 근로자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슬로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슬로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안전보건공단은 ‘나는 국민가수다’의 우승자 박창근 가수를 내세워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이란 안전송을 선보였다. 대박이 터졌다. 유튜브 조회 수가 한 달 만에 100만을 넘었고, 누적 조회 수 200만을 돌파하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공공기관의 캠페인 노래가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많은 열성 팬을 지녔고 가창력이 뛰어난 박창근의 힘이 발휘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국민 공모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 가사도 한 몫 한 게 아닌가 싶다. 산재 예방 슬로건도 국민 공모 방식을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 힘을 다시 한 번 믿어 보자.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안전보건 후진국이란 불명예에서 벗어나 안전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꿈을 실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