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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쓰라린… 노예도 시인도 전사가 됐던 ‘혁명의 도시’

  • 입력 2023-03-06 08:54
  • 수정 2023-03-0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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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향락의 도시에서 가난한 도시를 거쳐 관광 도시로 거듭나는 쿠바 아바나. 게티이미지뱅크



■ 지식카페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24) 쿠바 아바나

1514년 스페인 정복자가 처음 상륙한 곳 ‘아바나’로 지어… 금광·사탕수수 호황에 ‘신대륙의 관문’으로 발전
두번의 독립전쟁 실패 뒤 1959년 카스트로 사회주의 혁명…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잉태했던 ‘카리브해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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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내 시는 화창한 초록색/ 내 시는 불타는 선홍색/ 내 시는 상처 입은 사슴/ 산속 보금자리를 찾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 한 몸 바치리라.”

쿠바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의 시에 붙인 노래 ‘관타나메라’이다. 단순하고 명료한 언어, 격정적 감정과 강건한 의기가 넘치는 작품이다. 쿠바 민중이 너무나 사랑해 아바나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다. 시인 마르티는 1853년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어린 나이로 제1차 쿠바 독립 전쟁에 참전해 스페인 식민주의자들과 맞서 싸우다 체포돼 6년간 복역했다. 시적 재능을 꽃피운 것은 망명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미국과 유럽을 떠돌면서 독립을 향한 염원을 불태우는 한편, 혁명적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세련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모데르니스모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관타나메라’의 노랫말은 망명 중 발표한 걸작 시집 ‘소박한 노래’(1891)에 수록된 시들에서 조금씩 따온 것이다.

“대지의 불쌍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의 운명을 던지고 싶네.” 1895년 마르티는 스스로 밝힌 다짐대로, 몇몇 동지와 함께 몰래 쿠바로 들어온 후,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제2차 쿠바 독립 전쟁의 시작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한 달 후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세상을 떠났다. “억압받는 국가에서 시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혁명 전사가 되는 것뿐이다.” 자기 말대로 시와 삶을 하나로 살았던 지사다운 최후였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처음 상륙했을 때, 이 땅엔 수천 년 전부터 농경 문명을 이룩해 온 타이노, 과나아타베이, 카리브 등 여러 원주민 부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복 과정에서 이들의 유산은 남김 없이 파괴됐다. 그러나 현대 쿠바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잃어버린 발자취’에서 상상력을 통해 이들의 삶을 복원한다. “야생이라는 인식만큼 그들의 실체에서 동떨어진 것도 없다. 물웅덩이에 화살을 쏘아 물고기를 정확하게 맞히고, 기술적으로 집의 서까래를 나뭇가지로 덮는 이들은, 삶의 연극 무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소화하는 고수의 경지에 이른 인간이었다.”

원주민들이 쿠바나칸이라고 불러왔던 이 섬의 이름을 콜럼버스는 쿠바라고 제멋대로 줄여서 유럽에 알렸다. 시인 니콜라스 기옌은 외쳤다. “바닷길을 통해서 악한 영혼의 전령인 해적이 들어왔다.” 1514년 악령 같은 스페인 정복자들은 자신들이 처음 내린 바닷가에 도시를 세운 후, 이름을 아바나라 붙였다. 이 아름다운 항구 도시는 이후 아메리카 대륙 정복의 디딤판이 되었고, 단단한 요새 도시로 발전하면서 ‘신대륙의 열쇠이자 서인도 제도의 성벽’으로 불렸다. 1607년 아바나는 결국 쿠바의 수도가 됐다.

스페인 식민 체제에서 원주민의 삶은 비참했다. 금광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전염병에 걸려 급속히 숫자가 줄었다. 노동력이 부족하자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강제 이주시켜 노예 노동에 종사시켰다.

17세기 들어 아바나는 노예 노동을 근간으로 크게 발전한다. 엘모로성, 성천사 교회, 산라자로 병원, 산타테레사 수도원 등이 이 무렵에 지어졌다. 18세기 중엽 아바나 인구는 7만 명을 넘어섰고, 리마와 멕시코시티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세 번째의 큰 도시로 성장했다.

아이티 혁명(1791∼1804) 이후, 카리브해 설탕 산업의 중심이 산도밍고에서 쿠바로 옮겨오면서 격변이 시작됐다.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는 크리오요의 영향력이 늘어나고, 1812년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는 등 흑인 노예의 자각과 반발이 커지면서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은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아바나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농산물 가게. 게티이미지뱅크



당시 아바나는 북미 국가와 무역이 증가하면서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호화 극장이 건설되는 등 문화적으로 세련된 도시로 변신했다. 스페인 작곡가 세바스티안 이라디에르는 번영하는 아바나를 방문한 후, 일몰이 내려앉는 항구, 길게 펼쳐진 말레콘 방파제, 그곳을 지나는 한 여인을 소재 삼아서 ‘라 팔로마’라는 낭만적인 속삭임을 창조했다. “만약 당신의 창가에 비둘기 한 마리가 찾아온다면/ 내가 보냈다고 여기고 애정으로 보살펴주오.”

한편, 도밍고 델 몬테 같은 지식인은 시인-노예였던 후안 프란시스코 만사노에게 ‘자서전’(1836)을 집필하게 하는 등 문학을 통해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학대에 시달리던 만사노는 괴로움과 슬픔에 찬 심정을 고백했다. “어릴 적엔 기쁨과 활기의 상징으로, 황금 부리라 불렸던 입술이 슬픔으로 뒤틀렸다. 나를 아바나로 데려다줄 날개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노예 출신 작가 수아레스 이 로메로 역시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꾸짖었다. “노예제는 대기에 독을 퍼트렸고, 그 독은 인류애적 생각을 없앴으며, 유색인종의 불행한 얼굴을 향한 증오와 경멸의 흔적만 남겼다.”

1868년부터 10년 동안 제1차 쿠바 독립 전쟁이 일어나 다양한 인종의 쿠바인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스페인 본토 출신 백인과 크리오요 계층 사이의 차별이 전쟁의 주요 원인이었다. 무려 20만 명 희생자를 낸 끝에 투쟁은 실패로 끝났다. 스페인은 정치 개혁과 노예 해방을 약속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고통받던 민중들은 1895년 마르티를 뒤쫓아 제2차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마르티는 말한다. “오, 곤충이여, 일어나라! 도시 전체가 독수리들로 가득 차 있구나.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걸어라.” 3년간 이어진 전쟁은 희생자 40만 명을 낸 후 비극으로 끝나고, 엉뚱한 자가 들어와 지배자가 된다. 미국이었다.

1898년 아바나에 정박하던 미국 군함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 사고 끝에 침몰했다. 쿠바가 영국 손에 넘어가거나 혁명으로 흑인 국가가 될까 싶어 두려워하던 미국은 기회를 틈타 스페인과 전쟁을 개시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넉 달 만에 미국 승리로 끝나고, 파리 조약에 의해 스페인은 쿠바 독립을 승인하고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 해외 식민지를 미국에 대부분 넘겨줬다.

미국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군정을 실시하면서 파나마 운하를 보호하는 해군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쿠바를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 야심을 꿈꿨다. 쿠바인들의 저항이 점차 격렬해지자, 1902년 초대 대통령 에스트라다 팔마를 내세워 쿠바를 일단 독립시켰다.

그러나 쿠바가 해방된 건 아니었다. 플랫 수정안에 따라 미국은 관타나모 기지를 할양받고, 쿠바 내정에 언제든지 개입할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쿠바를 반식민지로 만들었다. 이후 미국은 국익을 빌미로 군대를 보내 몇 차례나 쿠바 정국에 개입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방파제가 세워진 해안도로 말레콘. 게티이미지뱅크



1933년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그는 반대 세력을 수시로 암살하는 등 무자비한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미국은 이를 묵인하는 대신 쿠바의 이권을 싹쓸이해 단물을 빨아 마셨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쿠바 혁명을 일으킬 때까지 바티스타 정권은 국부를 미국에 바치고, 미국 기업과 결탁해서 아바나를 호텔, 카지노, 나이트클럽이 넘치고 갱단이 활개 치는 향락의 도시로 만들었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그 퇴폐적 화려함을 잘 보여준다. 미국의 폭주에 따른 쿠바의 고통에 대해서 기옌은 탄식한다. “내 조국은 겉으로는 부드럽다,/ 그리고 안으로는 매우 쓰라리다.”

아바나는 ‘카리브해의 파리’라 불리면서 성장을 누렸고, 그 번화함에 매혹돼 관광객과 이민자 수백만 명이 몰려서 북적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도시에 22년간 거주하면서, ‘노인과 바다’ 같은 걸작을 남겼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이러한 힘찬 문장은 카리브해의 강렬한 햇빛 아래가 아니라면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서민은 괴로웠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져 넷 중 한 사람만 고기, 계란, 생선 등을 정기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하위 20% 인구가 전체 소득의 2%만 얻었는데, 이는 이후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낮은 수치였다. 카스트로가 투쟁에 나섰을 때, 시민들이 열렬히 환영한 것은 당연했다.

혁명 이후, 카스트로는 미국과 결별하고 소련 지원을 받아 농지 개혁을 하고, 사유 재산 국유화 정책을 폈다. 그에 따라 향락의 도시 아바나는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그러나 함께 가난한 도시가 되었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해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2016년 50년 넘게 집권했던 카스트로도 세상을 떠났다. 혁명은 이제 끝났다.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는 등 관광 도시로 변모 중인 아바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상의 왕국’에서 카르펜티에르는 혁명으로 불탄 도시에서 아바나 사람들의 회복 탄력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줬다. “완전한 파괴 속에서도 자기 리듬을 회복하는 도시를 응시했다. 시장 기능이 멈춘 시장에 좌판을 벌이려고 농부들은 과일, 치즈, 양배추, 사탕수수를 들고 모였다.” 절망 속에서도 경이를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삶이다.

문학평론가

■ 용어설명

모데르니스모 운동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한 문학 및 예술 운동이다. 당대 이 지역에서 분출했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식민 통치 아래 지속됐던 유럽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을 표출한 것이다. 호세 마르티, 루벤 다리오 등이 주도한 이 운동의 특징은 유럽 문화의 경직된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실험적 스타일을 수용하여 이룩한 참신하고 세련된 현대성이다. 원주민 문화에서 가져온 이미지와 상징, 이국적 주제를 채용함으로써 라틴 문화의 독창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메인호 폭발 사고

1898년 2월 15일 쿠바 아바나 항구에서 미국 전함 메인호에 의문의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미국 병사 266명이 사망하면서, 미국-스페인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은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을 드러내면서 태평양과 카리브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노리던 중이었다. 쿠바 독립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미국 시민 보호를 이유로 메인호를 아바나에 파견했다. 침몰 이유는 스페인 기뢰설, 보일러실 폭발설, 미국의 자작극설 등이 있으나 미국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페인 식민지 대부분을 빼앗아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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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건 개딸과 헤어질 결심”… 박용진, ‘이재명 결단’ 촉구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건 개딸과 헤어질 결심”… 박용진, ‘이재명 결단’ 촉구 박용진(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민주당의 총단합에 가장 큰 걸림돌이 내부를 공격하고, 분열을 선동하는 개딸(‘개혁의 딸’의 줄임말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극렬 지지층을 일컫는 말)이고 정치 훌리건"이라며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개딸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박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변화와 결단 : 개딸과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 같이 주장했다. 박 의원은 "정치 훌리건은 축구에서의 훌리건과 똑같다. 팀을 망치고 축구를 망치는 훌리건처럼 정치 훌리건, 악성 팬덤은 정당을 망치고 민주주의를 박살낸다"며 개딸로 일컬어지는 이 대표 극렬 지지층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나아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좌표 찍고, 수박(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라는 의미)을 찢고, 의원들을 조리돌림하며 문자를 보내고, 18원(후원금)을 보내면서 자신이 무슨 대단히 큰 애국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착각하지 마십시오!"라며 개딸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박지현(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제끼고 이낙연(전 국무총리) 보내고 박용진 이원욱 이상민같은 수박 다 내보내겠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후련해도 옆에서 지켜보는 국민들은 기겁을 한다"고 썼다.박 의원은 그러면서 "개딸 여러분들께서 그렇게 단일대오가 좋으시다면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마음) 단일대오 깃발이 나부끼는 국민의힘으로 가라"며 "이준석(전 국민의힘 대표) 찍어내고, 나경원 안철수도 찍어눌러 어떤 이견도 용납하지 않고 초록은 동색이 아니라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국민의힘이 여러분이 선망하는 정당의 모습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박 의원은 "민주당은 그런 정당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만들어 온 민주당의 길은 정치적 다양성을 배양하고 다양한 견해, 토론이 가능한 정당, 바로 민주정당에 있다"고 일갈했다. 박 의원은 "당내 의원을 향한 내부총질에만 집중하는 행위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면서 "개딸들이 수박을 찢을 때 국민은 민주당을 찢는 개딸에 질린다. 국민을 질리게 하는 정당이 어떻게 집권을 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박 의원은 "민주당의 변화와 결단은 개딸과 헤어질 결심에서 출발한다"며 이 대표와 당 차원의 결단을 촉구했다. 박 의원은 "증오와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는 당의 현실은 달라져야 한다"며 "해당행위, 당을 분열시키는 이들에 대해 이재명 당대표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반민주적 행위가 민주당을 위한 것이라는 착각을 결코 방조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에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개딸과 헤어질 결심"이라며 "민주당의 화합을 위한 이재명 대표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표는 이날 울산에서 당원 및 지지자들과 만나는 ‘국민보고회’를 열고 "우리 앞의 차이가 있어도, 이겨내야 할 상대와의 차이만큼 크진 않다. 미워도 식구"라고 말했다.이 대표는 "(상대방의) 이간질을 정말 조심해야 한다"며 "섭섭해도 손 꼭 잡고 반드시 꼭 이겨내자"고 호소했다.자신의 지지층에게 비명(비이재명)계를 겨냥한 문자폭탄 등 ‘내부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이 대표는 "화를 다 내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세상이 어디에 있겠는가"라며 "마음에 안 들어도 같이 손 꼭 잡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이 대표는 "‘수박’ 이러지 말자. 여러분들은 ‘찢’(형수 욕설 논란에 휩싸인 이 대표를 조롱하는 표현)이라고 하면 듣기 좋은가"라고 묻고 "그런 명칭을 쓰면 갈등이 격화한다"고 했다.이 대표는 "언론에, 상대에 이용당하고 내부에 안 좋은 뜻을 가진 이들에게 또 이용당한다"면서 "상대가 쓰는 방법은 분열과 갈등으로 힘을 약하게 하는 것으로 보이기에, 최대한 힘을 합쳐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오남석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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