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규모 7.8 대지진이 강타한 시리아 북부 알레포 진데리스에서 지난 14일 한 주민이 무너진 건물 사이를 걷고 있다. 6일 발생한 지진으로 시리아 반군과 난민이 밀집한 북서부 지역은 큰 피해를 봤다. 사망자 집계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AP 연합뉴스

■ Global Focus - ‘시련의 땅’ 시리아 … 이번엔 ‘7.8 강진’에 신음

‘정권퇴진’낙서로 촉발된 내전
종파갈등 더해 12년째 장기화
美·러·이란·사우디까지 얽혀

해외탈출만 500만명 이르지만
유럽서도 난민 신청 거부 속출
3세 쿠르디 죽음에 전세계 충격

튀르키예發 지진이 북부 강타
구호통로 유실에 피해 커지고
사망 집계못할만큼 정보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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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땅’ 시리아에 또 한 번의 절망이 찾아왔다. 지난 6일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규모 7.8 강진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 북부를 뒤흔들었고, 14일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뉴욕타임스(NYT) 집계 기준 5500명에 이른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보다 은 최소 9000명이 숨졌고, 잔해 더미에 묻힌 실종자까지 고려하면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사실 시리아를 덮친 건 지진뿐만이 아니다. 2011년부터 12년째 시리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내전은 미국과 러시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와 쿠르드족, 심지어 이슬람국가(IS) 등 테러단체까지 엮인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여기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폭압 정치와 경기 침체, 난민 문제 등 세상에 어두운 면모를 모두 갖춘 ‘불행의 종합세트’로 불리는 곳이 바로 시리아다. 그 고통을 짊어진 건 다름 아닌 시리아 국민이다. 내전과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시리아인들은 오늘도 “신이시여, 우리를 구하소서”라는 절규를 내뱉고 있다.

◇‘아랍의 봄’ 꿈꿨던 시리아… 정부는 사린가스로 답했다 =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소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민중은 정권의 퇴진을 원한다’는 조그마한 낙서에서 시작됐다. 경찰은 대대적인 범인 색출 작업에 나섰고, 10대 소년 15명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들을 처참하게 고문하는 과정에서 13세 소년이 사망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알아사드 대통령 독재에 숨죽이던 시민들은 분노에 차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시 튀니지 등 아랍 주요국에선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촉구하는 이른바 ‘아랍의 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격화한 시위는 무장투쟁으로 변했고 그만큼 정부의 대응 수위도 높아졌다.

여기에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까지 더해지며 사실상 전쟁 단계에 접어들었다. 시리아 인구 약 2200만 명 가운데 수니파는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지만, 시아파 분파인 나머지 알라위파가 정부와 의회, 군 요직을 장악한 탓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수니파로선 반정부 시위가 알아사드 정권을 전복할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하지만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정부를 지원했고, 위기감을 느낀 사우디와 카타르 등 수니파 국가는 반군을 도왔다. 특히 정부군은 2013년 8월 반군 주둔 지역에 사린가스 공격을 퍼부어 최대 14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시리아 사태에 발을 들이기를 꺼렸던 미국이 모호하게 개입하기 시작했고,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우려한 러시아까지 노골적으로 알아사드 대통령 편을 들면서 전 세계가 분쟁에 뛰어든 모양새가 됐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15년 9월 그리스 코스 섬으로 향하던 3세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튀르키예 보드룸의 한 해안가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EPA 연합뉴스

◇내전에 쏟아진 난민… 3세 쿠르디의 안타까운 죽음 =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12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40만 명에 이른다. 해외로 탈출한 난민이 500만 명, 시리아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들도 700만 명이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교수는 미 블룸버그통신 기고문에서 “미군은 러시아 용병을 공격하고, 이란과 이스라엘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튀르키예군은 쿠르드인을 죽였다”며 “시리아는 ‘모두의 모두에 대한 전쟁터’가 됐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쏟아진 난민을 책임지는 곳은 없었다. 인권 최전선이라는 유럽에서도 시리아 난민 비자 신청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심지어 유럽연합사법재판소(ECJ)는 2017년 시리아 알레포 출신 난민 가족 5명이 2016년 10월 레바논 주재 벨기에 대사관에 신청한 임시 비자 발급을 거부한 벨기에 정부 결정이 옳다는 판결까지 내렸다. 2015년 9월 튀르키예 보드룸의 한 해안가에서 3세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발견돼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결국 ‘유럽의 관문’인 튀르키예에 시리아 난민 지원금 60억 유로(약 8조2212억 원)를 지원,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도록 하는 ‘당근’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하며 언제라도 시리아 난민을 내쫓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사이 시리아 난민은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았고, 포화가 그치지 않는 시리아로 돌아가기에 이르렀다.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간 대지진… 구조·구호 모두 뒷전 = 지난 6일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은 시리아 반군과 난민이 밀집한 알레포 등 시리아 북부를 강타했다. 오랜 내전으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 상황에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건물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누구도 정확한 사망자를 집계하지 못할 만큼 정보도 차단됐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며칠째 시리아 사망자 정보가 갱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조·구호물자 지원이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북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바브 알하와’가 지진으로 유실돼 구조의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72시간 동안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유엔과 시리아 정부가 뒤늦게 반군 지역으로 향하는 통로 두 곳을 추가로 여는 데 합의했지만, 민간구조대 ‘하얀 헬멧’의 라이드 알 살레 대표는 “수백만 명의 시리아인을 가스 살포와 폭격으로 죽인 시리아 정권 허가를 유엔이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다”고 비판했다.

WHO에 따르면 시리아 북부 이들립 인구 500만 명 가운데 80%인 400만 명이 시급한 지원이 필요한 처지에 놓였지만, 구호물품을 실은 트럭 단 52대가 도착했을 뿐이다. 코로나19와 콜레라 등 2차 피해도 심각하다. 설상가상으로 시리아인들은 각종 루머에도 시달리고 있다. NYT는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혐오와 차별이라는 고통까지 겪고 있다”며 시리아인들이 시신에서 보석을 훔쳤다는 식의 뜬소문이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