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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주의 Deep Read - 정부혁신과 개혁 딜레마

尹의 ‘민첩한 정부’로 가려면 관료사회의 대응성 강화하며 사적 이익 노린 권한남용 막아야
잦은 정권교체 따른 前정부 책임추궁 반복이 공무원 복지부동 불러… 구조적 딜레마 해결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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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제에 정부혁신을 추가해 ‘3+1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3대 개혁과제를 성취하는 것에 더해 정부혁신을 통해 정부와 공공 부문의 비효율을 과감히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구체적인 과제는 두 개다. 어떻게 하면 정부조직이 새로운 공공문제와 공공수요에 대한 ‘적극적 대응성’을 갖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료사회가 사익이 아니라 행정의 최고 가치인 ‘공공성 강화’를 구현하게 할 것인가.

◇합법성과 대응성

정부혁신과 관료사회 개혁과제는 지난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때마다 용두사미로 끝이 났다. 반복되는 실패에도 윤석열 정부가 정부혁신을 주요 개혁과제로 추진해야만 하는 것은 이 과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정부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사정책 수단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발생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구조적 딜레마가 정책 실천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첫째, 관료제가 태생적으로 지켜야 하는 합법성의 원칙 때문에 ‘경직된 형식주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막스 베버가 지적한 것처럼 법치주의 국가에서 공공행정은 기본적으로 법규와 절차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정책 집행과정에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모든 시민에게 공공 서비스를 골고루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 변화로 공공재의 내용과 성격이 빠르게 변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공공 서비스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틀에 안주하는 형식주의로는 주요 개혁과제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윤 정부에서 최근 강조하는 ‘민첩한(agile) 정부’를 만들려면 행정기관의 책임자가 정책의 자율성을 발휘하고, 일선 공무원이 현장의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일정한 재량권이 부여돼야 한다.

◇정권교체와 복지부동

하지만 빈번한 정권교체에 따라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 ‘복지부동’ 행태가 행정의 합법성과 대응성 충돌이라는 딜레마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여덟 차례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 감사와 책임 추궁이 반복됐다.

행정 법규와 절차를 위반했는지를 살펴본다고 하지만, 이전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감사와 조사과정에서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이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거나 처벌받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불렀다.

여야 간 정권교체가 잦아지면서 공무원의 몸조심 현상은 만성화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집권 세력이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단기 성과주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낮게 조작하도록 공무원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합법성과 대응성 간의 딜레마에서 효과적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관료조직이 전문성을 갖고 일을 능동적으로 추진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 성과를 신속하게 도출해야 하는 집권 세력의 처지에서는 매우 답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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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사익의 충돌

둘째, 관료제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무원이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행정 활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공재를 창출하고 국민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면에서 공공성은 행정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다.

그런데 공직자가 공익이 아닌 사적 이익을 위해 권한을 사용하는 권한 남용이 비일비재하다. 위의 <표>는 공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만이 공무원사회의 유일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공공 조직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일하지 않고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더욱 치명적인 병리 현상이다.

성남시 시장 재임 시절 민간 개발업자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고 사익을 취했다는 혐의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수사를 받고 있다. 해당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공직자 권한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많은 공공기관장이 정권교체 이후에도 임기를 이유로 여전히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과 전혀 다른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아래서도 오직 자리만을 보존하려는 전형적인 권한 남용이다. 해당 공공기관의 구성원들은 기관장의 눈치를 보면서 정부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구조적 딜레마

2022년도 정부 업무평가에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것은 지난 정권에서 받았던 자신의 임기를 끝까지 버티겠다는 전현희 위원장의 고집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내부 구성원 사이의 불협화음뿐만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과의 협력과 조정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매번 정권교체기 때마다 공공기관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다가 권한 남용으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됐던 점을 상기하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공공기관장을 강제로 물러나게 할 수만은 없는 딜레마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이 같은 현상은 근본적으로 임원추천위원회 등을 통해 전문성 있는 인사를 뽑아 임기를 보장한다는 법적·제도적 형식논리와 집권 세력의 정치적 임명이라는 정치 현실의 불일치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단순히 윤석열 정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여야가 공공기관장의 ‘임명’과 ‘면직’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명확하게 부여하는 법률 개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와 정치적 고려가 필수적인 자리를 명확히 구별해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민첩하고 유연한 정부를 향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구조적인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4가지 행정 유형

위의 <표>에서 보듯, 관료가 공공문제와 공공수요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면 ‘책임 회피’가 된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면 ‘권한 남용’이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공익을 추구하면 ‘부작용 최소 행정’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공익을 추구하면 ‘적극 행정’이 된다. 윤 대통령의 정부혁신은 어디를 향할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용어설명

‘공공성’은 사전적으로는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 공개성, 공익성, 권위성 등을 요소로 함. 정부 행정은 이를 통해 사회 공공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함.

‘민첩한(agile)’ 조직이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는 조직. 원래 글로벌 첨단기업이 도입한 조직이론인데 최근 세계 각국이 정부조직에 적용하고 있음.

■ 세줄요약

정부혁신의 과제 :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정부혁신의 과제는 두 개. 어떻게 하면 정부가 공공수요에 대한 ‘적극적 대응성’을 가질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료사회가 ‘공공성 강화’를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

적극적 대응성 : 관료제의 태생적 한계는 경직된 형식주의에 얽매인다는 것. 합법성만 강조하는 형식주의로는 ‘민첩한 정부’를 만들 수 없음. 공무원사회에 자율성과 재량권을 더 부여해 개혁 성공을 견인해야 함.

공공성 강화 : 행정의 기본적인 가치는 공공성 강화. 공직자가 공적 이익 아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치명적인 병리 현상임. 관료조직이 적극적 대응성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적극 행정’을 하도록 혁신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