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육군 제12사단 52연대 소속 GOP 33소초에서 발생한 김 이병 총기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 이병의 부친(가운데)이 사건 관련 심정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구급차, 10분 거리 22분 만에 도착”
“극단적 선택인데 ‘오발사고’라며 허위보고”

최전방 일반전초(GOP)에서 집단 괴롭힘을 겪던 이등병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 부대 차원의 은폐 작업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부대 측에서는 119구급차가 도착한 뒤에도 입구에서 13분간 막아 세우고, 가해자 중 하나인 간부는 ‘오발 사고’라고 허위보고 했다는 주장이다.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앞서, 평소 그를 주로 괴롭혀왔던 선임병으로부터 “근무 끝나고 보자” “이번에는 죄송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등의 협박을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13일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11월 28일 육군 제12사단 52연대 소속 GOP 33초소에서 발생한 이등병 김모 씨의 총기 사망 사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김 이병은 신병 훈련을 거쳐 부대에 배치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계근무 중 극단적 선택을 하고 총상으로 숨졌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김 이병의 사망 당일, 구급차가 신고 접수 2분 만에 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속부대의 통제로 부대 입구(양구 통일관) 앞에서 13분 동안 대기해야 했다. 김 이병이 오후 8시 44분 쓰러진 이후, 3분 만에 관련 상황 보고가 부대에 이뤄졌다. 이후 부중대장은 오후 9시 9분 119에 신고했고, 소방은 2분 뒤 곧장 출동해 오후 9시 13~14분쯤 부대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부대 입구에서 구급차 출입을 통제한 바람에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9시 33분이었던 것으로 군인권센터는 파악했다. 김 일병에 대한 사망선고는 오후 9시 57분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군인권센터 측은 “생사가 오가는 응급 상황에서 군의 통제 때문에 구급 인력이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가는데 22분이나 허비한 셈”이라며 “군은 사건 정보를 외부로부터 통제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사고사’로 허위 보고한 정황도 있다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A 일병은 김 이병의 사망 사고를 가장 먼저 목격하고 즉각 부대에 보고했다. 그런데 이 보고를 받은 B 하사는 지휘부에 “김 이병이 A 일병에게 라이트를 받고 방탄조끼에 넣을 때 판초 우의가 총기에 걸려서 1발이 격발됐다”며 오발 사고인 양 허위보고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B 하사는 이 같은 허위보고에 대해 군사경찰에 ‘두려운 마음에 허위보고를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육군 군사경찰은 B 하사를 군형법상 허위보고죄로 입건하지 않고 입건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 측은 B 하사를 허위보고죄로 고발하겠다는 방침이다.

부대에서 김 이병을 괴롭힌 것으로 조사된 인원은 6명이며, 이 중엔 허위보고를 한 B 하사 역시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A4용지 29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노트나 소초원 30여 명의 인적사항이 담긴 전투편성표를 암기토록 강요했다. 가해자들은 A 이병이 암기하지 못하면 “총으로 쏴버리겠다”, “다른 부대로 쫓아버리겠다”며 협박했다.

피해자 사망 당일에도 김 이병은 다른 병사와의 수하(군대에서 야간에 경계 작전 시 피아식별을 위해 초병이 하는 행위)에 실패하자 선임병으로부터 “근무 끝나고 두고 보자”, “이번에는 죄송하단 말로 넘어갈 수 없을 것”, “내려오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을 받았다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결국, 김 이병은 이로부터 30여 분 뒤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육군 군사경찰은 김 이병을 괴롭힌 것으로 조사된 6명을 모욕죄, 협박죄로 입건해 민간 경찰로 넘긴 상태다. 이를 두고 군인권센터는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점과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A 상병과 B 하사를 비롯한 가해자 6명에 대한 수사를 반드시 구속수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병의 아버지는 “(B 하사의) 허위보고 때문에 우리 가족은 지난 몇 달 동안 아이가 왜 사망했는지 제대로 모른 채 혼란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며 “아이를 관리하는 일도 사건 이후의 대처도 모두 엉망이었다. 가해자와 관련자 모두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권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