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종영미술관 ‘분화’전에서 선보이는 송영수 작가의 철조 작품과 드로잉. 서구 초현실주의를 나름대로 해석한 추상 작품들이다. 장재선 선임기자

■ 故김종영 제자들 작품 한자리에… 내달 26일까지 ‘분화’전

故송영수, 초현실주의 철조각 등
최의순, 석고로 구상·추상 망라
故최만린, 생명 추상적으로 표현
최종태, 가톨릭 성미술·여성조각

해방 후 미대서 공부한 첫 세대
같으면서도 다른길 걸어 보는맛

송영수(1930∼1970), 최의순(89),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한국 현대 조각의 거목들이다. 이들은 모두 1950∼19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김종영(1915∼1982) 교수에게 배웠고, 스승을 이어 서울대에서 후학을 길렀다.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평창동 산자락에 있는 미술관에 가면 본관에서는 김종영 작품 상설전을, 그 옆에 자리한 신관에서 네 사람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전시 제목인 ‘분화(分化·Differtiation)’에 맞게 전시공간이 펼쳐지는 셈이다. 작품들을 살펴보면, 한 스승에게서 나온 제자들의 예술 세계가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최의순(왼쪽), 최종태 작가가 자신들의 작품 부스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김종영미술관 제공

김종영은 당대 한국 미술계를 압도했던 서구 미술 사조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동양 미술의 정수를 되새기며 동서(東西)가 공감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을 추구했다. 이른바 한국 조각의 정체성을 탐색한 그의 정신은 제자들에게 이어졌는데, ‘청출어람’의 제자들은 각기 새로운 개성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에 입학한 송영수는 철조 조각의 선구자다.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적극 수용하고, 용접을 이용한 철 조각을 시도해 빼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이번에 철 조각 5점과 더불어 드로잉 10점을 선보이는데, 서구 초현실주의를 해석한 추상의 정수를 볼 수 있다.

천재 조각가로 불리던 송영수는 만 40세에 요절해 미술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1970년 추풍령에 세워진 높이 30m의 ‘서울부산간(경부)고속도로준공기념탑’이 유작이 됐다. 그의 큰딸인 송현옥 극단 물결 대표(세종대 교수)는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고뇌가 작품 안에 녹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1953년에 입학한 최의순은 조형 어법에 관심을 두고 인체 구상 작업에서 출발해 추상으로 확대했다. 주로 석고를 이용해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작업을 해 온 그는 이번에 조각 4점과 드로잉 10점을 내놨다. 지난 9일 전시장을 찾은 그는 “김종영 선생은 정신의 근본을 바탕에 정립한 뒤 작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돌아봤다.

3년 전 타계한 최만린은 1954년 서울대에 입학해 김종영을 만났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작품화한 이브 시리즈로 주목받았고, 동양 문화권의 서예에서 비롯한 천지현(天地玄) 연작으로 작품의 정체성을 세웠다. 철조 ‘아’ 연작을 거쳐 ‘태’ ‘맥’ 시리즈를 통해 생명성을 추상적으로 조형화했다. 이번에 그의 조각 5점, 드로잉 8점을 볼 수 있다.

역시 1954년에 입학한 최종태는 나머지 세 사람과 달리 평생 인체, 특히 여성 조각에 몰두했다. 가톨릭 성미술 대가인 그는 “불교 미술인 반가사유상에서 한국의 미를 자각했다”고 한 바 있다. 자신의 미학 근본에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서양 작가뿐 아니라 동양의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네 작가는) 해방 후 우리가 만든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첫 세대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종영미술관의 박춘호 학예실장은 “1950년대 혼란기에 한국에 처음 생긴 조소과에서 조각을 어떻게 우리 미술로 만들었는지 살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3월 26일까지.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