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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통한 길마다 ‘새 로마’ 만들었다

  • 입력 2023-01-16 09:03
  • 수정 2023-01-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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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2)지역 소멸 위기와 대학

알랭 드 릴 ‘격언집’

로마는 원래 작은 읍락에 불과
정치·군사적 영향력 확장하며
사방 뻗어난 길에 정복지 조성

현지인을 로마 시민으로 포용
도시정비 통해 지역 균형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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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비어간다. 내년 전국 대입 선발인원은 51만 명인데, 금년 고3 학생은 40만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재수생이 가세한다고 해도 전국의 대학에는 대략 4만∼5만 명의 공석이 생길 것이다. 어떤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할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신화’가 하나 있다. ‘좋은’ 대학,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가야 안정적이고 연봉이 높은 직장을 얻고, 돈을 많이 벌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신화. 이런 신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은 마당에, 모든 대입 수험생들은 일단 ‘서울’과 ‘의대’를 노린다. 특히 ‘서울’은 엄청난 힘으로 전국의 젊은이들을 쭉쭉 빨아들인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젊은이들을 서울에 빼앗겨 활력을 잃고, 점점 정체되고 시들어갈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행복이 보장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생존의 원리니까.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자식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 서울이 사람답게 살 만한 가장 유력한, 유일한 곳으로 통한다면 더욱더 그럴 수밖에.

이에 견줄 서양의 격언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은 프랑스의 릴 출신 신학자 알랭이 1175년에 펴낸 일종의 격언집에 나온다. “천 개의 길이 사람들을 세세토록 로마로 이끈다.” 로마제국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포럼의 사투르누스 신전 곁, ‘로마의 배꼽’이라 불리는 곳에 ‘황금의 이정표’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이정표는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아우구스투스(사진)가 세운 것인데, 일설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그 이정표를 기준으로 로마로부터 광활한 로마제국의 수많은 주요 도시들로 통하는 길과 그 거리를 표시하였다고 한다. 거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상징적인 기념비였다. 그런데 알랭이 전하는 말은 액면 그대로 로마가 갖는 흡입의 구심력만을 함축하지 않는다.

로물루스로부터 시작된 로마는 아주 작은 읍락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마침내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구심점은 분명 최초의 그 로마였다. 로마가 성장하면서 로마는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장착하며 커져 갔고, 그 덕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로마는 성장했지만, 도시의 덩치만 커진 것은 아니다. 로마인들은 확장의 과정에서 로마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따라 정복지에 ‘로마’를 재생산했다. 로마의 시민들을 보내 그 지역에 심는 한편, 현지인들을 로마시민으로 포용했다. 모든 길이 애초의 로마로 통하면서, 동시에 그 로마로부터 뻗어나간 그곳에 새로운 로마가 만들어져나간 것이다. 사람들은 건강한 신체의 핏줄에 흐르는 혈액처럼 ‘천 개의 길’을 통해 활발하게 로마로 들어갔고 로마로부터 나왔다.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힘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길의 구심력과 함께 그 힘을 다시 확산시켜 나가는 길의 원심력에 있었다.

위 격언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는 말이 다양한 분야에서 수긍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는 구심점이 되는 중심 도시를 가지고 있으니 이 말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말의 의미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서울만 발전하고 성시를 이루며 그 외의 지역을 도외시한다는 지역발전의 불균형을 자조적으로 함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역 불균형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서울의 확장성은 서울만의 확장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것은 대한민국 전체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다. 서울에 모여드는 힘이 다른 창조적인 원심력을 발휘해서 지역 전체로 골고루 퍼져나갈 때, 지역마다 그 고유한 서울이 조성되고, 그래서 역동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각 지역의 대학이 고유의 활력을 찾아 지역 발전의 주역이 되고, 그래서 알랭의 전언을 따라 ‘천 개의 길이 사람들을 서울로 이끌고, 서울에서 지역으로 이끄는’ 날을 열 수 있기를 고대한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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