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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 다 죽었으니 한양에 목맬 수밖에…

  • 입력 2023-01-16 09:03
  • 수정 2023-01-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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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2)지역 소멸 위기와 대학

정약용 ‘하피첩’

도성서 수십리 벗어나면 황폐
하물며 먼 지방 어떠하겠는가

벼슬이 끊기더라도 한양 살아
고상하고 수려한 안목 갖춰야
향촌 문명 살아있는 中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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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는 지방대라는 익숙한 표현 대신에 ‘지역대’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지방이라는 말이 서울 이외의 지역을 가리키는, 곧 ‘중심 대 주변’이라는 극복해야 할 구도에 갇힌 표현이기에 중립적 표현인 ‘지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간은 대학입시의 계절이기도 하다. 12월 초순 무렵부터 수시모집 결과가 발표되고 뒤이어 정시모집이 해를 넘기며 숨 가쁘게 진행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시기는 ‘지역 소멸’이라는 이슈가 널리 환기되는 때가 되었다. 대학입시 결과 수년 전부터 예측되던 지역대 위기가 하나하나 현실이 되고, 이는 해당 대학의 위기에 그치지 않고 대학이 위치한 지역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기에 그러하다.

주지하듯이 지역 소멸 위기는 수도권 집중화의 부작용이다. 하여 수도권 집중화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다산 정약용(사진)은 강진에 유배된 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이 보내온 색 바랜 붉은 치마를 오리고, 그 위에 한지를 덧댄 후에 두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어 보냈다. 그중 한 대목에서 다산은 ‘한양살이’에 대한 욕망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우리나라는) 도성에서 수십 리만 떨어져도 황폐한 세계가 되니 하물며 먼 지방은 어떠하겠는가? 사대부가의 법도는 벼슬에 나아갔을 때는 마땅히 산기슭에 거처하면서 처사(處士)로서 본색을 잃지 말아야 하고, 벼슬이 끊기더라도 필시 한양에 거처하여 고상하고 수려한 안목을 잃지 말아야 한다. …… 가세가 쇠락하여 도성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면 응당 근교에 일단 머물며 과수를 키우고 채소를 재배하며 생계를 도모하다가 자산이 다소라도 넉넉해지면 바로 도성 중심으로 들어가도 늦지 않다.”(‘하피첩’)

다산은 당장은 유배를 당한 처지라 피치 못하게 가족을 농촌에서 살게 했지만 훗날의 계획은 오로지 도성 십 리 안에 사는 것이라며 아들들에게 기필코 한양에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당장 입성할 수 없다면 한양 근교에서라도 살라고 했다. 근교를 벗어나면 황무지와도 같은 세상인지라 한양에 살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도성 근교, 그러니까 수도권에서라도 살아야 그나마 한양살이에 필요한 자산을 마련할 수 있게 되기에 그랬다.

그렇다고 다산을 ‘한양 우월론자’로 봐서는 안 된다. 그가 한양살이를 강조한 까닭은 한양에만 있는 “고상하고 수려한 안목”의 구비를 가능케 하는 인문, 곧 문화 때문이었다. 한양이 출세에 유리한 중심지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양에 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재력의 구비가 필요했다. 당시에도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높은 수준의 문화 향유는 난망한 일이었다. 아무리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고상하고 수려한 안목을 갖추는 데는 비용이 들게 마련이었다.

하여 정치에 큰 뜻이 없어도 관직에 나서야 했다. 관계 진출은 지식인으로서 재력을 갖추는 확실한 길이었다. 게다가 한양은 관계로 향한 길이 가장 넓게 뚫려 있는 곳이었다. 한양은 그렇게 권력과 재력, 문화가 집적되어 있는 곳이었고 한양 외에는 그러한 곳이 없었다. 만약 다른 지역에서도 고상하고 수려한 안목의 구비가 가능했다면 다산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중국은 향촌에서도 문명을 누릴 수 있다면서 윗글을 시작했기에 하는 말이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기에 한양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음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다산의 사례는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지역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일러준 셈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지역의 붕괴는 늘 중앙의 붕괴를 야기했다. 나라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 살리기는 정권의 이해관계 차원이 아니라 국가 존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지역 살리기를 위한 꾸준하고도 지속적 정책 집행이 가능해진다. 20∼30년을 내다보며 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도 힘든 일을 어찌 4년이나 5년을 가지고 할 수 있겠는가?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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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딸 “본인들은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같은 잣대 적용하나”…父 선고일에 김어준 인터뷰 자신의 ‘입시 비리’ 의혹으로 부모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가 재판을 받기도 한 조 전 장관의 딸 조민(32) 씨는 6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저는 떳떳하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밝혔다.조 씨는 이날 오전 공개된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의 인터뷰에서 “제가 지난 4년간 ‘조국의 딸’로만 살아왔는데 오늘(지난 3일) 아버지가 실형을 받으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떳떳하지 못한가’라고 곰곰히 생각해보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조 씨는 아버지가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검찰이나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저희 가족을 지난 4년동안 이렇게 다룬 것들 보면은 정말 가혹했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본인들은 스스로에게 아니면, 그들의 가족들에게 똑같은 잣대 적용하는지, 그것은 묻고싶다”고 말했다. 조 씨는 입시 비리 의혹 등에 관한 조 전 장관의 1심 재판 선고가 이뤄지던 지난 3일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자 김어준 씨와 인터뷰를 녹화했다. 조 씨는 조 전 장관이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고 나온 후 인터뷰 예정을 알렸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은 딸의 인터뷰 계획에 대해 “처음에는 말씀이 좀 없다가 ‘잘 다녀오라’고 했다”고 조 씨는 전했다.조 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지난 4년 전 인터뷰 후 어머니(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수감됐다. 그때 심정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때는 정말 정말 힘들었다”며 “제가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에는 아버지가 장관직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조 씨는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인 지난 2019년 10월 4일 김 씨가 TBS라디오에서 진행하던 ‘뉴스공장’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조 씨는 조 전 장관이 1심 선고를 받기 전 ‘법정 구속’ 가능성에 대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 씨는 “(지난 3일) 나가기 한 세 시간 전부터 양복 다 입더니 A4용지에 빼곡히 뭔가를 써서 대문에 붙여놨다”며 “몇 가지 이야기 하자면 ‘아버지가 신청한 어머니 면회 이런 것들을 다 취소해야 한다. 그래야 어머니 면회 횟수가 보장된다’, ‘공과금·세금 이런 것 몇월 언제 내라’ 이런 것들(이 쓰여 있었다)”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또 “(조 전 장관이) 대문 앞에 책을 이렇게 다 쌓아 놓았다”며 “쌓아 놓은 책 순서대로 10권씩 본인한테 넣어달라 이런 말씀이 적힌 것”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또 “아버지까지 만약에 구속되면, 제가 가장이란 생각에 어제 사실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덧붙였다.조 씨는 ‘입시 비리’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 방식대로 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주변에서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게 어떠냐는 조언은 없었냐’는 질문에 “해외로 가서 다시 시작하라는 분들이 정말 많다”며 “실제로 도와주겠다는 고마운분들도 몇분 계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씨는 “저는 도망가고 싶지 않다”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떳떳하다, 친구들이랑 가족들도 다 변함없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가끔 언론 때문에 힘들긴 하다”며 “저는 한국에서 정면으로 제 방식대로 잘 살 것”이라고 덧붙였다.조 씨는 ‘입시 비리’ 논란에 관한 핵심 의혹이었던 ‘가짜 표창장’ 문제에 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표창장으로 의사가 될 수는 없다”며 “그 당시에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필요했던 항목들에서 제 점수는 충분했고 그리고 어떤 것들은 넘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생활을 한 지 2년 됐는데, 동료 선배들이 본인의 의사로서 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자질이 충분하다고 들었다”며 말했다. 한편 조 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맨얼굴을 공개하고 향후에도 공개적으로 의료 관련 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조 씨는 ‘그동안은 조용하게 숨어서 일했던 병원에서는 계속 일하기 힘들텐데’라는 질문에 “그래서 더이상 병원에서 일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주기 싫어서”라며 “저와 관련된 재판이 끝나기 전에는 제 의료지식을 의료봉사에만 사용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어 “국내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고 SNS도 하고, 모두가 하는 평범한 일들을 저도 하려고 한다”며 “더 이상 숨지 않고”라고 말했다. 그는 ‘SNS 주소를 공개해도 되냐’는 질문에도 “공개해도 된다”며 “(댓글로 괴롭히는 사람이) 오셔도 된다. 많은 의견 달라”고 덧붙였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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