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中大)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현역 의원들 저항과 미지근한 여론 탓에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데 정치 양극화가 도를 넘으면서 지난해 김진표 국회의장과 뜻있는 여·야 의원들이 제안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신년 인터뷰에서 적극 동조했다. 이젠 여론도 호의적이다. 국가 백년대계와 정치개혁 차원에서 개편의 적기다.

그런데 중대선거구제에 호의적 반응을 보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중대선거구제 대신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힘을 실었는데, 신중론으로 돌아선 것이냐’는 질문에 “다당제,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시스템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비례대표를 강화하는 게 맞겠다”고 했다. 성남시장 시절 중대선거구제 도입·확대를 주장한 적이 있다는 지적에 이 대표 측은 “지방선거 기초의원에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지방의원은 중대선거구로 뽑아도 되지만 국회의원은 안 된다는 발상부터 궤변이다. 비례대표 확대 주장은 더 심각한 문제다. 지난 총선을 앞둔 선거법 개정 때도 비례대표 확대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 의원 정수 늘리기 주장으로 연결되고, 급기야 위성정당으로 왜곡됐다. 이 대표의 발상이 윤 대통령의 개혁 의제 주도로 비치는 데 대한 반발인지, 아니면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한 자신의 공천권 강화를 노리는지 저의를 알기 힘들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이 대표는 중대선거구 협상의 물꼬를 터주는 게 옳다. 비례대표 확대를 빌미로 의원 정수를 늘리겠다는 꼼수는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