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뒤로가기
검색/메뉴
검색
메뉴
문화2023 신춘문예

‘마음의 형태’를 부드러운 조형미에 빼어나게 견줘

  • 입력 2023-01-02 09:13
  • 수정 2023-01-02 09:22
댓글 0 폰트

photo이미지 크게보기 나희덕(왼쪽부터)·박형준·문태준 시인이 시 응모작 심사를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시 심사평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을 세밀하게 읽었다. 작년에 비해 응모 편수는 조금 줄었지만, 응모작들의 수준은 높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들이 많아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응모작들은 개인적 서사를 시로 풀어낸 작품들의 비중이 컸는데, 이 작품들을 통해 삶의 질곡과 통증, 소통의 회복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시적 모티프로 폐점과 채무, 구직과 고된 노동 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곤고한 일상을 체감할 수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들은 ‘행방’ ‘비광’ ‘인공눈물’ ‘어린이는 자란다’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이었다.

‘행방’은 외할머니의 부음을 들은 시적 화자의 내면을 담담하게 노래한 작품이었다. ‘귤’ 냄새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이미지화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마음의 누선을 건드려 뭉클했다. 도입부가 다소 평이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비광’은 삼촌이 겪은 비탄의 내용을 기록한 작품이었다. 가게 구조와 “오 도씩 기울어진 화장실”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묘사가 돋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삼촌에게 곧 닥칠 절망에 대한 어두운 암시로 유효하게 연결시켰다. 개인적 체험을 보다 보편적으로 확장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인공눈물’은 함께 보내온 다른 시편들에 비해 새로웠다. 사물을 결합해서 정서를 만들어내는 신선한 솜씨가 있었다. 이 작품은 영화를 보며 “울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화자의 행위를 통해 오히려 우리의 가슴에 있는 공통의, 애련(哀憐)의 감정을 발견해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돌려놓을 수 있는 모양은 없어요”와 같은 표현에서처럼 모호한 진술이 더러 있었다.

‘어린이는 자란다’는 성장기를 다뤘는데 자아와 가족과의 관계를 진솔하게 표현해 감동적이었다. 시행의 경쾌한 보법도 인상적이었다. 서사가 길어지면서 긴장감을 상쇄하는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고심 끝에 심사위원들은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에 동의했다. 우선 이 작품을 포함해 응모한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고 안정적이었다. 산문적인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생신(生新)한 이미지와 사유의 쌓임이 특별하게 만들어낸 시구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어서 시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견인해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특히 당선작은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마음속에 있는 깨끗한 서정을 빚어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단순하게 도자기를 빚어내는 경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구획된 직선과는 대별되는 곡선과 둥긂을 지향하는 마음의 형태를 백자의 부드럽게 굽은 조형미에 빼어나게 견주었다. 이러한 안목과 감각이라면 앞으로 시단에서 자신만의 육성을 산뜻하고 묵직하게 표출할 신예라는 데에 깊은 신뢰와 기대를 갖게 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이 기사를 친구들과 공유해 보세요.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안내 버튼

최근 12시간내
가장 많이 본 뉴스

문화일보 주요뉴스
전국 난임부부 ‘삼신할배’ 만나려 텐트치고 ‘노숙런’
전국 난임부부 ‘삼신할배’ 만나려 텐트치고 ‘노숙런’ 경주 = 글·사진 김린아 기자 linaya@munhwa.com“6년간 시험관 시술을 10번이나 했는데 번번이 임신에 실패했어요.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은 다 돌고 있어요. 오전 4시에 도착했는데 이미 30팀이나 대기하고 있더라고요.”토요일이던 지난 20일 오전 7시쯤 경북 경주시 한 한의원 앞은 캠핑장을 방불케 했다. 난임으로 힘들어하던 연예인 부부들이 이곳에서 한약을 지어 먹고 임신에 성공했다는 일화가 방송을 타면서 텐트를 치고 밤새 진료를 기다리는 난임 부부들이 ‘노숙런’을 벌이면서다. 이곳에서 만난 심모(46) 씨는 “‘삼신 할배’로 불리는 이곳 4대 원장이 맥을 잘 짚는다고 해서 부산 시댁에서 금요일 하루 숙박하고, 오전 3시에 출발했다”면서도 150m 길이로 한 줄로 늘어선 30여 개의 텐트와 80여 명의 환자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저출생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 같다. 이렇게 간절하신 분들이 많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난임 시술 건수는 20만1412건으로 2018년에 비해 47.6% 늘었다. 부부 7쌍 중 1쌍이 난임 부부라는 조사도 있다. 2022년 난임 진단자는 23만8952명에 달한다. 난임 부부가 늘면서 난임 치료에 유명한 병원을 찾아 ‘원정 순례’를 가는 환자들이 생기는 이유다. 이곳에서 만난 부부들은 모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오전 9시 30분 진료가 시작되자 ‘대기 1번’으로 한의원으로 들어선 이모(33) 씨는 “지난 2년간 인공수정을 4번이나 했는데 화가 날 정도로 매번 실패했다”며 주변의 추천을 받고 반신반의하며 캠핑 도구를 싸 들고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이 씨는 “아직 젊은 나이라 금방 아이가 생길 줄 알았는데 매번 실패하니 조급해지고 간절해졌다”며 “이런 정성이 하늘에 닿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대기 4번’을 받은 곽모(34) 씨는 “난임 시술비 지원을 받아도 시험관 시술 한 번에 100만 원씩 나가 부담이 크다”면서도 “양의학이든 한의학이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한의원 백진호(5대) 원장은 “초혼 연령이 높아진 탓에 과거에는 20∼30대 환자들이 주였다면 이제는 30∼40대 환자들을 많이 본다”며 인기 비결로 “130년간 운영하면서 쌓인 환자 데이터와 질 좋은 한약재”를 꼽았다. ‘실패담’을 듣고도 절박한 마음에 이곳을 찾았다는 부부들도 있었다. 전날 오후 4시부터 줄을 섰다는 임모(43) 씨는 “주변인 중 3명은 이곳에서 약을 먹고도 임신에 실패했지만, 일단은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왔다”고 말했다. 최영민 서울대 산부인과 명예교수는 “난임 치료 성공률 등 객관적 데이터가 주어진다면 환자의 선택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자들은 양의학이든 한의학이든 100%의 성공률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
기사 댓글

본문 글자 크기를 조절하세요!

※ 아래 글자 크기 예시문을 확인하세요.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본인에 알맞은 글자 크기를 설정하세요.

닫기
좋은 기사는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