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광표 서원대 교수

1955년, 당시 27세이던 역사학도 박병선(1928~2011·사진)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출국 전 인사차 역사학자 이병도를 찾아갔는데, 이병도는 박병선에게 이런 말을 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고서를 약탈해 갔는데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잘 있는지 한 번 찾아보세요.”

박병선은 196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도서 대장에 ‘1867년 해군부에서 기증받은 책이 340여 권 소장돼 있다’는 문구를 읽었다. 박병선은 그것이 외규장각 약탈 도서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도서관 곳곳을 열심히 뒤져도 실물은 찾을 수 없었다.

1978년 10월, 박병선은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 창고의 한 직원과 얘기를 나눴는데, 직원에게 “한자로 된 책을 다발로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답을 얻었다. 정신이 번쩍 든 박병선은 곧바로 창고로 달려갔다. 그곳에 외규장각에서 약탈된 도서가 있었다. 박병선은 이 사실을 주프랑스 한국대사관과 언론사 파리특파원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도서관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박병선은 도서관 측으로부터 질책을 당했고, 결국 이듬해 사표를 내야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수년 동안 매일 도서관을 찾아 외규장각 도서를 열람하고 그 목차와 내용을 정리했다. 그 성과를 1985년 ‘조선조의 의궤’로 출판했다.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191종 297권의 전모가 처음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이 중 294권이 조선 의궤였다.

1992년 대한민국과 프랑스 사이에 반환 협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프랑스 측이 ‘등가 교환’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오랜 진통 끝에 2011년 대여 형식으로 조국 땅에 돌아왔다.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지 145년, 박병선이 그 존재를 확인한 지 33년 만의 일이었다. 박병선의 노력으로 알려진 외규장각 의궤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