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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동물부터 성상까지… 차가운 돌덩이 하나하나에 온기 불어넣다

장재선 선임 기자
장재선 선임 기자
  • 입력 2022-11-22 09:07
  • 수정 2022-12-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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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천주교 대전교구청에 있는 김대건 신부상. 한진섭 조각가가 만들어 봉헌한 작품으로, 순교 성인의 담대한 용기를 표현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7) 바티칸성당 김대건상 제작하는 한진섭의 세계

미켈란젤로 피에타상 바로 뒷벽
딱 한 곳 비어있던 벽감에 설치
높이 3m77㎝ 달하는 대형성상
크레인 없이 5m 높이에 올려야
“25세 젊은이의 모습 표현할 것”

‘해태상’ 제작하며 동물에 관심
강아지 · 돼지 · 소 등 의인화하며
화목 · 평안 · 공존의 메시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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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장에 자주 가본 사람은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흔히 볼 것이다. 당연히 지켜야 하나, 그 문구를 보면 공연히 더 만지고 싶어진다. 금기를 넘어서려는 욕망이 꿈틀대는 까닭이다. 한진섭(66) 조각가는 그 위태로운 욕망을 어루만져준다. 자신의 작품을 만질 뿐만 아니라 껴안거나 앉아서 쉴 것을 권한다. 서울 강동구 일자산허브천문공원에 가면 그의 권유를 실컷 따를 수 있다. 여기에 그의 돌 조각품 25점을 전시한 ‘한진섭 조각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 한 명의 작품으로만 된 조각 정원으론 국내 1호이다.

◇기분 좋아지는 일상 속 예술 지향

정원 들머리에 자리한 소녀상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았다. 거기서부터 조각들을 찬찬히 둘러보니 가족의 행복, 세상의 공존을 주제로 삼은 것들이었다. 엄마와 아기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빠도 대화에 동참한 화목한 가정을 형상화했다. 돼지 가족이 산책하는 모습의 작품 ‘복덩이들의 소풍’은 익살이 느껴져 미소가 지어졌다. 오토바이 뒤에 소가 앉아 있는 작품도 있다.

화강석으로 제작한 조각들은 우둘투둘한 질감 속에서 곡선의 부드러움이 여실했다. 작품 대부분은 의자 기능을 겸하고 있다.

“누가 봐도 기분 좋고 편안해지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천성적으로 뾰족한 게 싫어서 곡선을 지향합니다.”

아름다워야 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소박하나 초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한 작가의 조각 철학이다. 그는 순수미술 작품도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쑥 들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차가운 돌에 온기를 불어넣는’ 그가 지난달 세계 가톨릭계 뉴스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외벽에 설치하는 김대건 신부 조각상의 작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 성상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바로 뒷벽에 세워진다는 것, 그 자리에는 수도회를 창립한 성인들의 조각상만 있는데 예외적으로 김대건 신부 상이 들어간다는 것 등이 큰 화제였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경기 안성에 있는 그의 작업장을 찾았다가 놀랐다.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커서였다. 널따란 정원에 돌조각들이 즐비했고 작업실과 창고, 사무실 겸 휴식 공간 등 건물이 3개 동이었다.

“부지가 2500평입니다. 1990년대에 논이었던 땅을 한 평에 3만4000원씩 사서 흙으로 메웠어요. 흙값이 땅값보다 더 들어갔지요(웃음).”

그는 경기 성남시 분당의 자택에서 이곳으로 매일 출근해서 작업을 한 후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작업장은 그에게 천국의 놀이터다. 그는 창고에 그득한 작품들을 보여주며 보물을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이 됐다.

“제가 작업장에 늘 머물렀기에 작품들이 나온 거지요. 모든 작품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들려고 합니다. 요즘 작가들은 컴퓨터로 많은 것을 한다니 제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긴 해요. 하지만, 컴퓨터로 하지 못하는 손맛의 질감이 있으니까 제 가락대로 저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의 작업실에 가지런히 보관돼 있는 연장들이 어찌나 많은지 입을 벌리게 했다. 수십 년 동안 돌을 깨서 형상을 창조해온 장인의 땀이 거기 배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게 낙이어서 정원에 작품을 늘어놨다고 했다. 의인화한 동물 조각이 많은 것은 사연이 있다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강동구 일자산허브천문공원 내 ‘한진섭 조각정원’에 있는 작품들.



“십수 년 전 크라운해태그룹으로부터 해태상 제작을 요청받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아주 새로운 해태상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는데, 너무 까다로워서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각종 동물 공부를 하게 됐지요. 2년간 그렇게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동물상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그는 강아지가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는 모양의 대형 석조를 가리키며, “잘 먹고 잘 싸야 행복하니까요”라고 했다. 그의 작품에 담긴 해학이 일상의 평안을 지향한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성미술은 아름답되 기도 분위기 맞게

한 작가는 전국 성당과 천주교 관련 기관들의 요청을 받아 성미술(聖美術)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서울(논현 2동·중계양업·홍제동 성당, 씨튼영성센터), 경기(평택 팽성, 분당 성요한·성바오르·성마태오 성당), 충남(보령 순교성지 갈매못, 양촌공소, 용성대성당), 전남(나주 광주가톨릭대), 강원(평창 대화·원주 봉산동 성당)에 그의 작품이 두루 봉헌돼 있다. 주로 제대와 독서대, 성수대, 십자고상, 십자가상 등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기도하는 성소에 걸맞은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습니다. 현대적 감각과 한국의 전통미를 조화시키려 애썼습니다. 성당에 영구 설치되는 작품이니 나중에 문화재가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지요.”

그는 경기 의왕시 하우현 성당의 한덕운 복자상, 수원 버드내 성당의 정하상 성인상도 만들었다. 세종시에 있는 대전교구청의 김대건 신부 상도 그의 손으로 제작됐다. 유흥식 추기경이 주교 신분으로 교구장으로 재직할 때 요청을 받았다.

“담대하고 신앙심 깊은 모습을 돌조각으로 만들려고 하니 힘들었어요. 얼굴 표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갓을 쓴 상태에서 그렇게 해야 하니…. 너무 어려워서 7개월을 낑낑댔어요. 살이 쏙 빠지고 돌아버리겠더군요. 다 만들어 놓으니, 아내가 잘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미술사학자로 나보다 안목이 높은 사람인데, 그렇게 봐 주니 안심이 됐어요(웃음).”

그는 이런 과정이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작업을 하기 위한 훈련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고교 미술반 때부터 조각을 배우고 이탈리아에 유학한 것, 반세기 가깝게 돌 조각 작업을 하며 수년 전부터 인물상을 집중적으로 만든 것 등이 모두 하느님의 섭리라고 했다.

“재건축한 지 600년 된 성당의 벽감(壁龕·벽면을 우묵하게 해서 만든 공간)이 딱 하나 비어 있잖아요. 처음부터 김대건 신부 성상을 넣기 위한 자리였던 거죠(웃음). 유 추기경님이 그 자리를 눈여겨보다가 추진했는데, 교황청이 그걸 허락한 것은 기적이지요. 교황님께서 우리 추기경님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난 7월 교황청의 부름을 받고 들어가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후 대리석으로 유명한 지역인 카라라로 갔다. 바티칸 벽감 모형을 만들어 그곳 기술자들에게 건네주고, 김대건 성상에 알맞은 돌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돌을 찾았다는 연락이 오면, 이탈리아로 가서 제작에 들어갈 것입니다. 3m77㎝의 대형 성상을 바닥에서 5m40㎝ 올라간 벽감에 넣어야 하는데, 벽을 상하게 해선 안 되니 크레인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며, 김대건 신부의 용기를 담아내야 합니다. 성인 상이라고 하면 근엄한 표정만 떠올리는데, 25세 젊은이다운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와 대화를 마친 후 세종시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청으로 향했다. 그의 작업장에 머무른 시간이 예상보다 길었기에 세종시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었다. 토요일 오후 6시쯤의 세종시는 어둑신했는데, 교구청사는 조명을 밝히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환했다. 김대건 신부 상 앞에서 한 여성 신도가 기도를 드리고 있어서 발걸음을 조용히 했다. 야경의 불빛 속에 성인의 성상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11월의 밤인데도 바람이 훈훈했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풍겼다.

이미지 크게보기 한진섭 작가의 작업 준비실. 각종 석상의 모형들과 작업모자, 그리고 견본석들을 볼 수 있다.



고교 1학년때 미술교사 조수로 ‘돌 세계’ 입문… 아내 덕분에 전업 가능

■ 한진섭 조각가는


한진섭 조각가는 고교 1학년 때 돌조각의 세계에 들어섰다. 미술반 교사였던 유영교(1946~2006) 조각가의 조수가 됐기 때문이다. “집을 나와 학교서 생활하며, 선생님을 돕기 위해 돌을 쪼기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돌조각이 좋았어요.”

홍익대 미대 조소과에 들어가 전뢰진 교수(93·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게 배웠다. “전 선생님은 대단한 작가이신데, 제자들을 정말 사랑하셨지요.”

그는 모교인 명지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로 유학했다. 이탈리아서 결혼한 후 두 아이를 낳았다. “젊은 유학생 부부가 아이를 키우며 공부해야 하니 힘들었지요. 하지만 곤궁할수록 작품 활동에 전념했어요.”

그는 귀국 후 전업 작가로 사는 데 아내의 이해와 도움이 컸다고 감사를 표현했다. 그의 아내인 고종희 한양여대 명예교수는 미술사학자로 이름이 높다. 큰아들(한순규)은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이고, 작은아들(한창규)은 아버지 뒤를 이어 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다.

아내와 두 아들이 그의 도록에 각각 쓴 글을 보면, 그는 평생 조각 외에 다른 것에 눈 두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작업장에 매일 출근해 성실하게 돌을 깨는 일에서 행복을 찾았다. 주일인 일요일만 쉴 뿐 단 하루도 특별한 이유 없이 작업장에 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고 명예교수는 “세계 9대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했다. 하루쯤 빈둥거릴 법한데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작업이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돌 작업이니 먼지가 심해서 작업실의 사방이 뚫려야 합니다. 겨울엔 추우니 작업에 골몰해서 땀을 흘려야 합니다.”

한국조각가협회장을 지낸 그는 한국 미술에서 조각이 회화에 비해 덜 주목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후학들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작품을 만든다면 미래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컬렉터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힘든 것들을 기꺼이 견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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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 천주교 대전교구청의 야경

천주교 대전교구청사(사진)는 대전에 있지 않고 세종시에 있다. 대전 동구 용전동에 있던 교구청이 낡아서 신청사 부지를 물색하다가 도시가 급성장하는 세종시를 택했다. 지난 2019년 4월 기공해 2020년 12월에 완공했고, 올해 5월 봉헌미사를 했다. 교구 청사동(대건관)과 사제관동(양업관), 주교관동(다블뤼관)과 성당동으로 구성돼 있다. 대지 1만6000㎡에 들어선 건물들은 웅장하면서도 미려하다.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노트르담 성당을 모델로 삼아 170만 장의 벽돌을 써서 지은 성당동은 야경이 특별히 아름답다. 대건관은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는데, 그 앞의 널찍한 광장이 시민에게 개방돼 있다. 광장 한쪽에 자리한 성모당 제대에 김대건 신부 유해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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