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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

‘여성의 감각’ 으로 생생한 일상 묘사… ‘인간 · 사회 밑바닥’ 파헤쳐

박동미 기자
박동미 기자
  • 입력 2022-11-01 09:10
  • 수정 2022-12-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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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단순한 열정’의 포스터. 13세 연하 러시아 외교관 A와의 은밀한 사랑을 다룬 아니 에르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에서 A는 러시아 사업가 알렉산더로 각색됐다. 2020년 칸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곧 국내 개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 - 노벨문학상 수상 佛작가 에르노에 열광하는 이유

“오로지 체험한 것만 쓴다”
임신중절 · 혼외정사 등 낱낱이

가장 개인적인 내용에서부터
가장 사회적인 이야기 탄생시켜

수상후 ‘단순한 열정’등 ‘불티’
국내 독자에 사랑받고 있지만
프랑스 현지에선 평가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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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 여성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끝나는 스웨덴 드라마 ‘러브 앤 아나키’를 두근두근 정주행에서 소개했는데, 그 며칠 뒤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었다. 수상자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이 두 사람은 닮았다. 금발의 유럽 여성 작가. 그런 외형적인 것 말고, 이 부분이 그렇다. 드라마 속 인물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소설에 싣는 바람에, 이야기의 당사자로부터 항의를 받기 직전이었다. 기묘한 우연이다. “오로지 체험한 것만 쓴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천해 온 에르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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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노는 자서전과 소설을 합친 이른바 ‘오토 픽션’이라는 독특하고 독보적인(사실은 이름 자체가 모순인) 장르를 구현해 왔다.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썼다는 게 아니다. 자기 얘기를 그대로 썼는데, 허구의 세계인 소설로서 완성됐다는 의미다. 임신 중절, 혼외 정사, 결혼 생활, 그리고 가족에 대한 것까지 낱낱이….

그런 이유로 에르노는 국내 문단에서 ‘사생활 폭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호명되는 이름이다. 논란이 된 한국 소설 대부분 절판됐으나, 에르노의 소설은 프랑스뿐 아니라 국내 독자들에게도 꾸준한 사랑과 지지를 받아 왔다는 게 흥미롭다. 이미 17권이 출간됐으며, 노벨문학상 수상 후엔 대표작 ‘단순한 열정’과 ‘세월’ ‘빈 옷장’ 등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일본에선 2008년이 마지막 출간이었을 만큼, 관심 밖의 작가였고, 이번 수상도 출판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데 한국은 ‘노벨상 특수’를 누리니, 그 점도 특이하다.

하여, 이 특이하고, 흥미롭고, 묘하고, 독특한 ‘아니 에르노’라는 세계에 다가가 본다. 여든이 넘은 작가는 50여 년 소설을 썼다. 모든 것이 체험했던 것이라니, 불가항력의 호기심이 충만해진다. 독자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국내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인 ‘단순한 열정’과, 그것의 모태가 됐고, 정말로 수기에 가까운 ‘탐닉’(이상 문학동네)을 읽으며 생각했다. 무엇이 우리를 에르노에 빠져들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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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의 ‘나’는 한 남자로 인해 ‘열정적인’ 일상을 이어간다. 그는 나보다 열세 살이나 어리고, 유부남이며, 러시아에서 온 외교 주재원이다.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을 다룬 소설은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그를 위해 장을 보고, 집안을 정리하며, 그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를 메모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동안에도 오직 그 사람과 관계된 것에만 집중한다. 러시아를 둘러싼 정세, 그의 출장지와 겹쳐지는 장소 등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 말이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추동하는 건 오직 ‘열정’이고, 그것은 다른 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증오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연인과의 잠자리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 여과 없이 드러내는 자신과 상대방의 욕망, 구체적인 만남의 장소나 밀회의 시간 등에 ‘관음증’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막말로 ‘불륜’에 ‘막장’인 소설은 지루할 틈 없이 훅 읽힌다. 잔뜩 긴장한 채, 단숨에 달려 결승선에 들어가는 듯한 추리소설처럼 말이다.

그러나 중년 여성이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그게 실제든 아니든)가 이것 하나뿐인가. 에르노의 특별한 매력은 이 흔하고 진부한 서사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기존 문학이, 소설이라는 허구가 자꾸 감추고, 삭제해 버리는 생생한 감각과 이를 드러내는 솔직한 언어에 있다. 예컨대, 그와 사귀는 동안 나는 바흐를 듣기보다 유행가 가사에 마음이 흔들리고, 가끔 그에게 서운해질 때는 “그 사람은 욕망이라는 값진 선물을 하고 있잖아”라며 너무나 정확하게 자신을 위로한다. 또, 그가 머물다 떠나면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품고 있기 위해 다음 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밝힌다.

전문가들은 이런 에르노의 소설에 그만의 진한 ‘여성의 감각’이 있고, 아무도 기록해 주지 않는, 프롤레타리아의 언어들, 즉 ‘계급적’ 요소를 품은 표현이 살아있다고 평한다. 한마디로 젠체하지 않으며, 부르주아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에르노는 여성의 욕망을 여성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측면에서 최근 국내 문학 시장의 가장 큰 축인 ‘여성주의’ 작가로서 소구할 수 있었다.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교육열로 소설가이자 대학교수가 된, 소위 ‘신분 상승’을 이뤄낸 에르노는 자기 삶의 계급적 혼란과 그것이 주는 고통을 지속적으로 소설에 담았다. 또한, 그는 계급적 한계와 그로 인해 달라지는 언어와 삶의 경로 등을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해 썼는데, 아버지에 대해 쓴 ‘자리’와 어머니에 대해 쓴 ‘한 여자’가 대표적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가장 사회적인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재능. 이 지점에서 그의 소설은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로도 명명된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가난한 집 출신 아들딸이 부모 교육열에 힘입어 신분 탈출에 성공해 부모의 삶과 달라진 데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는 우리한테도 흔하고, 이것이 그다지 인기 작가는 아니었던 에르노를 국내 작가들과 편집자들이 공감하면서 책을 소개해 왔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에르노의 ‘계급 인식’은 ‘단순한 열정’에도 명쾌하고 담담하게 드러난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물론 그 ‘사치’는 내연남과의 관계가 정리되자 이렇게 바뀐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나 프랑스 현지에서 에르노에 대한 호불호, 문학성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분분하다고 한다. 영미권에서는 엄격하게 따져 회고록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서구 문학이 가진 내러티브의 한계를 느낀 스웨덴 한림원은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에르노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동아프리카 배경 소설을 쓰는 탄자니아 출신 영국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 대중가수 밥 딜런 등에게 문학상을 수여한 최근 행보를 보면 말이다.

에르노의 ‘폭로’ 수위는 만만치 않다. 그는 ‘단순한 열정’에 등장하는 연인이 노파심에 “당신, 나에 관해 책을 쓰진 않겠지”라는 말까지 했으나, 연인에 대해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그 말을 그대로 실었고,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쓴 게 아니라고. 단지 너의 존재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에르노 읽기’에 빠져들 준비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다. 2020년 칸 영화제에 초청된 동명의 영화 ‘단순한 열정’이 곧 국내 개봉한다니, 그것부터 보아도 좋겠다. 임신 중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사건’을 영화화한 ‘레벤느망’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볼 수 있다.

하나 더. 자신과 자신 주변의 모든 이를 소설에 등장시켜, 인간의 마음과 사회상의 그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게 한 에르노가, 반대로 그 대상이 된 적도 있다. ‘단순한 열정’을 보고 팬이 돼, 한때 에르노의 연인이었던 33세 연하의 작가 필립 빌랭이 쓴 ‘포옹’이다. 내연남 외교관을 향한 에르노의 욕망과 열정처럼, 책에는 에르노를 향한 빌랭의 욕망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썩 좋은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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