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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반드시 나물로 쓰여야 할 것 같은 운명의 먹거리가 있다. 커다란 시루에 콩을 넣은 뒤 빛을 가리고 물을 듬뿍 주어 기른 채소가 그것이다. 수분이 적당하니 싹이 트고 필요한 만큼 뿌리와 줄기가 자라니 씨앗 상태의 콩과는 다른 모양이 되고 본래 없었던 영양소도 생성된다. 콩을 쓰면 콩나물이 되고, 녹두를 쓰면 숙주나물이 된다. 그런데 이것의 이름은 왜 ‘콩싹’이 아닌 ‘콩나물’일까?

콩나물을 즐겨 먹는 다른 나라의 이름을 찾아봐도 우리의 콩나물은 특이하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모두 ‘콩싹’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고 영어권에서도 ‘콩싹’이란 의미의 ‘bean sprouts’를 쓴다. 콩의 싹을 틔운 것, 혹은 그것보다는 좀 더 기른 것에 굳이 ‘나물’을 붙인 것은 나물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등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푸성귀를 데쳐 양념한 후 밥상에 올린 것도 나물이지만 그 모든 재료를 나물이라 하니 콩나물이란 이름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옛 문헌을 찾아보면 19세기 후반에서야 콩나물이 나타난다. 그런데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사전을 보면 콩나물을 ‘콩기름’ 혹은 ‘콩길금’의 사투리로 보고 있다. ‘기름’이나 ‘길금’은 보리의 싹을 틔운 것을 뜻하는 ‘엿기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콩나물보다 콩기름이 서울을 비롯한 중앙어에서 쓰이고 있었거나 전국적으로 더 널리 쓰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콩나물은 무침, 국에서는 주재료로 쓰이고 찜에서는 보조 재료로도 쓰인다. 동남아 지역의 쌀국수에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의 생숙주를 얹어 주기도 한다. 본래 콩에서 나온 것이지만 싹을 틔워 기르는 과정에서 비타민C를 비롯한 많은 영양소가 생성되니 고마운 식재료이기도 하다. 기를 여건만 된다면, 길러서 모두 소비할 수만 있다면 집집마다 콩기름 혹은 콩길금을 길러봄직도 하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