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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

사랑과 무질서의 ‘위험한 밀당’… 그게 바로 ‘사는 재미’

박동미 기자
박동미 기자
  • 입력 2022-10-04 10:50
  • 수정 2022-12-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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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러브 앤 아나키’ 시즌 2의 포스터. 작가가 꿈이었으나 경영 컨설턴트가 된 소피는 일상의 균열과 혼돈, 무질서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의 방식과 세계를 보는 균형 잡힌 눈을 기르게 된다.



■ 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넷플릭스 ‘러브 앤 아나키’


출판사 컨설턴트인 주인공 소피
막내 직원 막스와 엮이며 ‘균열’
구조조정 위기인 회사는 ‘혼돈’
무질서 속에서 ‘진짜 나’ 찾아가

노벨문학상 선정국 스웨덴 배경
출판계 곳곳 미투·아우팅 등
어두운 문학의 현주소 다루기도
그림같은 북유럽 풍경도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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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발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일 년 중 문학이 가장 관심을 받는 이맘때가 되면, 문학 담당 기자들은 ‘나이서 오즈’와 같은 해외 베팅업체의 배당률 순위를 수시로 확인한다. 누가 상을 받을지 가늠해보기 위해서인데, 적어도 내가 이 배당률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이들 업체가 수상자를 맞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예컨대, 작년 수상자 압둘라자크 그루나는 명단에도 없을 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고, 재작년에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은 수상 확률이 25분의 1, 즉 4%에 불과했다.

‘올해 노벨상은 과연 누구?’와 같은 예측 기사 대신, 올해는 이 드라마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다. 며칠 전, ‘아, 곧 노벨문학상 기사를 써야 하는군’ 하다가,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하면 떠오르는 나라 스웨덴. 그 스웨덴의 한 작은 문학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러브 앤 아나키’다. 노벨문학상을 주는 나라의 문학 출판사라니. 이보다 확실한 명분도 없다. 게다가, ‘사랑과 무질서’라니. 제목도 벌써 문학적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줄기다. 하나는 40대 여성 소피(이다 엥볼)와 20대 청년 막스(비에른 모스텐)의 은밀하고 과감한 연애의 행방. 또 하나는 운영난으로 고심인 출판사 린드 라게르스테트의 행보다. 소피는 이 출판사의 디지털화와 구조조정을 위해 부임한 경영 컨설턴트이고, 막스는 IT 기사로 막내급 직원이다. 넷플릭스 예고편만 보면, 드라마는 두 사람의 일탈적인 관계와 스무 살이나 어린 연하남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19금 로맨틱 코미디다. 실제로 리뷰들을 보면, 많은 여성이 바로 그 지점에 끌렸던 것도 같다. 그러나 드라마는 사양 곡선을 그리는 종이 책 산업에서 분투하며,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갈등하는 출판사 직원들의 울고 웃는 해프닝을 그린 일종의 오피스 시트콤이기도 하다. 여기에, 효율을 강조하는 ‘돈’의 논리가, 예술과 문학 그리고 출판 생태계를 어떻게 교란시키는지, 그 풍경을 예리하게 꼬집은 풍자 코미디이기도 하다. 그러니, 로맨스와 오피스 얘기 중 뭐가 더 핵심인지 물으면,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밖엔.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 사랑도, 쉬지 않고 달려드는 삶의 무질서도 결국 주인공이 마주하고 넘어서야 할 숙명적 과제다. 러브 ‘또는’(OR) 아나키 아니고, 러브 ‘그리고’(AND) 아나키 아닌가.

한때 작가가 되고 싶었던 (습작 소설 제목이 ‘러브 앤 아나키’다) 소피. 지금은 책과 문학, 소설가와 시인도 자본의 논리대로 순위를 매겨야 하는 사람이 됐다. 그 방면에 꽤 유능한 그녀는 언뜻 안정된 가정과 전문적인 직업을 가졌고, 별 탈 없이, 꽤 괜찮은 삶을 영위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권위적인 남편은 아내의 꿈과 욕망엔 별 관심이 없고, 과격한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도 근심거리. 매일 정부를 비판하는 1인 시위에 나서다가 다치고 경찰서와 병원을 들락거린다.

이루지 못한 꿈, 해결되지 않는 불안 속에서 소피의 유일한 낙은 비밀스럽고 중독적인 습관(?)이다. 드라마 초반 이에 대한 묘사는 누군가에겐 다소 충격이자 장벽이 될 수 있다. 한국 드라마에선 상상도 못 할 장면인데, 그런 ‘적나라함’이 이 드라마가 지닌 낯선 감각이자 장점이다. 그리고 유쾌한 구석이 훨씬 많으니까, 제발(!) 포기하지 마시길.

이미지 크게보기 소피(이다 엥볼)와 막스(비에른 모스텐).



막스와 가까워지는 것도 다 이 습관 때문. 소피는 늦은 저녁 홀로 남은 회사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하다가 막스에게 들킨다. 약점을 잡힌 후 일종의 ‘게임’을 하며 둘은 깊은 사이로 발전한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기’ ‘거꾸로 걷기’ ‘대표처럼 행세하기’ 등. 혼란을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화면을 어지럽히는 두 사람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와, 드라마 제목 진짜 잘 만들었네.

소피는 순수 문학과 전통적인 책 발간 방식을 고집하는 출판사 직원들과도 갈등을 빚는다. 구조조정은 난항, 글로벌 OTT 회사에 출판사를 넘기려는 계획도 순조롭지 않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존재인 막스와의 밀회도 고민. 결단을 내리자. 질서를 되찾자. 그러나 드라마는 소피를 둘러싼 무질서를 최대치에 올려놓고, 시즌 1을 끝낸다. 소피가 목욕 가운만 걸친 채 거리로 뛰쳐나오는 엔딩 신도 ‘아나키’ 그 자체. 균열과 혼란을 통과하며 소피는 오롯이 자신과 세계를 들여다본다.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뭐지. 인생 대체 뭐지. 그리고 시즌 2는 이에 대한 답이다. 소피의 성장, 가정과 신분의 변화, 막스와의 이별과 재회 등으로 이어진다. 시즌 1이 잔뜩 벌여놓은 것들을 시즌 2가 회수하고 정리하기에, 드라마는 시즌별 8부작, 총 16편을 모두 봐야 완결된 스토리로 이해할 수 있다. 회당 30분 정도니, 그래 봐야 총 8시간. 주말 반나절을 투자하면 정주행이 가능하다.

단 한마디로 추천의 이유를 대라면 이것인데, 드라마엔 ‘이상한 쾌감’이 있다.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쿨’하면서도 어딘지 조금씩 나사가 빠진 듯 허술한데, 그들이 현실에서 분명 있을 법한 모든 것들을 툭툭 건드리고 꼬집으면, 너무 웃기면서도 소름이 돋는다. 예컨대, IP를 확보하기 위해 출판사에 투자한 OTT 회사의 CEO는 경영뿐 아니라 소설 내용까지 일일이 간섭하려 들고, 한국뿐 아니라 세계 출판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미투’ 사건이 떠오르는 에피소드도 있고, 최근 자주 논란이 되는 소설과 사생활 폭로(아우팅) 문제, 작가의 몸값을 최대한 올리려는 에이전트, 그리고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성별도 안 가린다) 잠자리 상대로 삼는, 문단의 권력과도 같은 소설가도 등장한다. 또, 출판 시장의 VIP가 된 인플루언서들과 기삿거리를 찾아 기웃대는 기자들도 나온다. 단언컨대, 출판사를 다루면서 이렇게 그 속살을 드러낸 드라마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노벨문학상을 선정해 온 저력, 문학과 그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람, 모든 것에 대한 깊고 넓은 지식과 정보, 이해가 있기에 가능한 작품 아닐까.

한국 시청자들은 후반부에 한 이름이 귀에 와서 꽂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미투’ 논란 후 그 존재감이 희미해진 한국 시인이 극 중 대사에 등장하는 것. 드라마는 그 이름을 스쳐 절정을 향해 간다. 온갖 편집자들을 농락(?)했던 소설가가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떠오른다. 결과는 직접 확인을.

한동안 ‘책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이 드라마를 홍보하고 다녔다. 재미도 물론이고, (밝힐 수 없는) ‘엔딩’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들어보고 싶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은 과연 분리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그 질문을 소환해 오고 싶어서. 그런데 이 드라마가 출판 및 문학과 연관된 걸 아는 이들이 생각보다 적었다. “아, 연하남과의 불륜 이야기 아닌가요”라든가, “낯선 배우들이 어쩐지 끌리지 않던데”라든가. 그럴 때마다, 목청껏 설득의 시간을 갖곤 했는데, 이렇게 쓰고 나니 속 시원하다.

멀고 추운 나라, 복지가 발달한 나라, 현대적이고 단순한(그리고 비싼) ‘북유럽 디자인’으로 유명한 나라, 스웨덴을 드라마로 만나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롭고 신선하다. 스톡홀름의 아름다운 건물과 고요한 풍경도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또, 조금은 각지고 까칠한 스웨덴 배우들의 얼굴은 늘 깨끗하고 단정한 한국 배우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어쩐지 시즌 3는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섣부른 총평도 내어본다. 인생엔 ‘사랑과 무질서’가 필요하다. 거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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