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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윤제균·김용화·김한민·강제규 등 소위 말하는 ‘1000만 감독’들이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모였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DKG)의 일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실과 ‘1000만 영화 감독들 마침내 국회로:정당한 보상을 논하다’를 공동 개최한 자리였죠.

이들 감독이 개정하고자 하는 법안은 저작권법 100조 1항인데요. ‘영상 제작자가 저작권을 취득한 경우 특약이 없는 한 영상물 이용에 필요한 권리는 제작자가 양도받은 것으로 추정한다’는 규정이죠.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은 그들이 협업해 만든 영화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주인공인데요. 하지만 이 법안에 따르면 그 주인은 ‘제작자’죠.

이 문제는 지난해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후에도 불거졌습니다. 역대 넷플릭스 작품 중 최고 흥행을 거뒀지만, 황동혁 감독을 비롯해 그 작품의 주역들에게 돌아간 몫은 미미했죠. 한국 감독과 배우, 스태프가 참여했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오징어 게임’의 주인은 넷플릭스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국내 창작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국내법입니다. 프랑스, 콜룸비아, 칠레 등에서는 저작권을 가진 이들에게 그 수익이 돌아가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잘 마련돼 있죠. 그래서 얼마 전 프랑스에서 자신이 만든 영화가 방송돼 저작권료를 받았다는 강제규 감독은 “영화를 하면서 그런 돈을 받아본 건 난생처음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내법은 이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오징어 게임’의 주역처럼 쓴 입맛을 다시는 사례가 빈번했죠.

이 날 공청회에서는 영화 감독들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한 1000만 감독들 외에도 100여 명의 감독들이 참석해 자리를 지켰는데요. 현재 차기작을 준비하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체류 중인 박찬욱 감독도 화상으로 참석해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영화 저작자가 누구인지 묻는 것이 난센스처럼 여겨졌다”며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영상 창작자 즉, 작가와 감독 등이 저작자로서의 위치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른 시간 안에 탄탄한 제도로 안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힘을 보탰습니다.

그런데, 이 날 저작권료가 창작자가 아닌 엉뚱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 현장에서 벌어졌는데요. 원래 10시에 시작하기로 됐던 행사는 10시50분이 돼서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50분 동안 공청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의 축사가 이어졌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지각’한 국회의원이 입장할 때마다 “OOO 의원님, 참석하셨습니다”라고 본 행사를 끊고 소개하기 바빴죠.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10시50분쯤 3명의 국회의원이 ‘인사로 대신하겠다’고 축사를 하지 않아 그나마 본론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날 행사에 참석한 한 감독은 “법안이 통과되려면 결국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찬성’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는데요. 10시50분 시작한 본 행사는 11시35분에 마무리됐습니다. 축사하는 시간이 주제 발표와 토론을 더한 시간보다 길었죠. 이후에는 참석한 감독들과 국회의원들의 포토타임이 이뤄졌는데요. 이야기의 핵심을 주고 받는 시간보다 국회의원들의 인사치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셈이죠.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아오자는 취지로 시작된 자리에서, 또 다른 주객전도가 벌어지는 상황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안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