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 - 일상 공간 배경의 베스트셀러 소설 2권

겉만 슬쩍 보면 같은 책으로 오해받을 것도 같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과 황보름 작가의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 가깝고 친숙한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데다가, 알고 보니 표지를 그린 작가도 동일인물이다.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두 책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이다. 얼마 전 교보문고가 발표한 상반기 종합 판매량에서 각각 1위, 9위를 차지했다. 10위 안에 소설이 5권이나 됐는데, 드라마 인기가 소설로 이어진 ‘파친코’(8위)나 수년째 베스트셀러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6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10위)에 비하면 화제성이나 작가의 인지도가 조금 모자라고, 특별한 마케팅도 없었다. 인기 비결이 뭘까. 책 동네 지인들에게 물으니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느냐”는 푸념만 돌아온다. 그렇다면 ‘입소문’뿐인데…. 궁금하니, 일단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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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모순적 제목과 에피소드 통해
사람의 공간·일상의 깊이 조명
직원이 된 알코올 중독 노숙인
정체 찾는 순간이 하이라이트

# 조금 불편해도, 사람다운 공간…‘불편한 편의점’ =말 그대로 ‘불편한’ 편의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은퇴한 전직 교사로, 남편의 유산으로 편의점을 차린 염영숙 여사가 한 노숙인을 편의점에 들이면서, 편의점을 둘러싼 인물들의 삶이 조금씩 변화한다.

편해서 편의점인데, 불편하다니. 그런 곳은 금방 망하고 말 거다. 정말로 염 여사의 편의점은 매출이 나쁘다. 그런데도 사정이 딱한 50대 가장 직원에겐 시급을 조금 더 쳐주고,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20대 직원에겐 합격하면 옷을 사주겠다며 격려한다. 이쯤 되면 ‘가족’이다 싶은데, 급기야 말도 어눌하고 과거도 기억 못 하는 노숙인 ‘독고’ 씨를 야간 근무자로 고용한다. 그는 처음엔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이었으나,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 돌려줄 만큼 “경우가 바른” 사람이어서, 점차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그는 편의점 포스기 사용법을 친절하게 알려 준 취준생 시현에게는 유튜브 영상을 올려보라 권하고, 올 때마다 원하는 도시락이 없어 낙담하는 손님을 위해, 냉장고 밑바닥에 도시락을 숨겨 챙겨주고, 남을 미행하며 돈벌이를 하는 전직 형사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물려준다.

온갖 인간 군상들이 드나드는 편의점. 정체를 알 수 없는 야간 알바. 이거 꼭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 같군, 하는 순간.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인경’이 등장해 외친다. “이건 편의점이라고요! 그리고 이 사람은 요리를 하지 않죠. ‘심야식당’은 주인장의 과거를 캐묻지도 않고. 근데 이 이야기는 이 주인공 야간 알바 사내의 정체를 알아가는 게 핵심 플롯이에요.” 인경은 무명 희곡 작가로 이제 곧 절필할 생각. 편의점의 독고 씨를 만난 후 마지막 작품으로 ‘불편한 편의점’을 쓴다.

인경의 말대로 소설은 후반으로 가면서 독고 씨를 좇는다. 술을 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기억을 되찾은 그가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이 하이라이트. 이러한 점을 빼면 전체적으로 엄청난 서사나 긴장 요소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입소문’이 나는 건, 볼 것이 넘쳐나고, 가만히 있어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소설에 기대하는 것이 달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술적 가치 추구나 극적인 재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일상의 깊이를 확인해 주는 잔잔한 감동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

지난해 4월 출간한 책은 최근 5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잘나가는’ 책들만 한다는 ‘표지 갈이’도 했다. ‘독고’ 씨가 일하는 야간 편의점을 그려, 약간 쓸쓸함이 감돌던 초판본과 달리, 이 ‘벚꽃 에디션’은 환하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편의점을 오갔던 인물들이, ‘꽃길’만 걷길 바라는 마음일까. 파란 하늘 아래 봄날의 벚꽃이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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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남동 서점입니다

퇴사 30대 女의 독립서점 배경
플랫폼 연재 거쳐 종이책 출간
애써 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직원·손님 ‘느슨한 연대’

#애써 뭐가 되려 하지 않는 사람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휴남동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휴남동을 검색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동네는 없다. 황보름 작가는 그저 ‘휴’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10년 다닌 대기업을 그만둔 후, 앞으로 10년을 오로지 자신에게 쓰겠다고 결심했다는 황 작가는 소설에서 회사를 관두고 서점을 차린 30대 여성 영주와 닮았다. 그러니, 쉴 휴(休)일 테고, 추측하건대, ‘남’은 작은 책방들이 몰려 있는 ‘연남동’에서 왔을 거다. 제목부터 ‘쉼’이다. 어딘가에 정말 있으면 좋겠다는 독자평이 많다.

‘휴남동 서점’은 한 글쓰기 플랫폼에 먼저 연재가 됐고, 전자책으로 출간했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이책으로 나온 사례다. 최근 ‘여름숲 에디션’도 새로 냈다. 숲속 서점 풍경에서, 독자들이 느꼈을 ‘완전한 휴식’이 겹쳐진다.

서점은 자신을 온전히 소진한 영주가 홀로서기 위해 마련한 장소다. 베스트셀러는 진열하지 않으며, 함부로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 등 자신만의 철학으로 서점을 꾸려 나간다. 요즘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인 독립 서점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휴남동 서점’의 핵심 키워드 역시 ‘위로’다. 계속된 취업 실패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알바를 시작한 민준, 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고등학생 민철, 희망 고문 같은 비정규직을 던지고 서점에 조용히 앉아 수세미를 뜨는 정서, 삶이 공허해져 한국어 문장에 매달리다가 작가가 된 승우 등 서점에 모여든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을 털어놓으며,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서점 안에는 이상하리만큼 사려 깊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서점의 오픈 시간이 아닌 때에 영주에게 말을 걸었다가, “근무 외 시간에 말을 걸면 안 된다”며 먼저 물러가는 손님, 이용시간 제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래 있으면 폐가 된다면서 3시간마다 차를 새로 주문하는 손님 등…. 다소 작위적이기도 한데 무례한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곁에 작가는 이렇게라도 ‘알아서’ 예의 바르고, ‘쓸데없이’ 마음 쓰는 사람들을 보내주고 싶었을 거다.

인물들은 애써 무언가가 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애써 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주와 민준이 바쁜 일과 중에도 어떻게든 함께 과일을 깎아 먹는 시간처럼 말이다. 노력에도 임계점이 있음을 인정하는 인물들은,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한계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속도를 더 내라고 닦달하는 세상의 소리로부터 물러난 공간” “시작엔 기대감이 있고 끝엔 충족감이 있는 하루” “좋은 사람들과의 의미 있는 대화”.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 오롯이 담겼다는 그 자체가, 입소문의 가장 큰 이유 아닐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