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초중고 교육과정을 2022 교육과정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허준이(許埈珥) 미국 프린스턴대 및 한국 고등과학원(KIAS)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식이 날아들었다. 박사학위 이전의 “모든 교육을 국내에서 받은 사람”이 필즈상을 받았다고? 환호의 와중에 초현실적이라는 감상도 나왔다. 우리 교육의 변화를 모색하는 시점에 시사점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개인적으로, 수학자로서의 허 교수 업적은 범상치 않던 대학원생 시절부터 많이 접했지만 방황하던 그의 개인사는 요 며칠 새 집중적으로 듣게 됐다. 시인을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에 어려움을 겪다가 자퇴한 이력, 그에 대비되는 거대한 성취…. 그래서 우리 교육 시스템과의 연관성 논쟁은 다채롭다.

수포자·국포자·영포자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교육과정 개편 때마다 단순 학습량 감축에만 집중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현존하는 최고 수학자의 한 명인 허 교수의 예를 보면, 이런 단순한 방향성에 의구심이 든다. 학습량의 과다 때문에 포기하는 게 아니라, ‘되풀이되는 반복’과 ‘실수 안 하고 빨리 풀기’에 눌려 버리기 때문으로 보이니까.

필즈상 수상 후 인터뷰에서 그는 “나를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주는 데 일조한 친구들에게 감사한다”라고 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학창 시절이 아니라, 즐거웠고 그리운 학창 시절이었다. 학교라는 교육 공동체는 교우관계를 포함하는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부분과 학습이라는 교과과정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위대한 수학자에게 학교는 실패와 상처의 공간은 아니었다. 인터뷰와 뉴욕타임스(NYT) 기사를 보면 ‘수학만 빼고 대부분 과목에서 잘했고 수학은 중간 정도는 했으니 수포자라는 건 과장’이라고 했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내는 데는 누구보다 재능을 보였지만, 빠르게 문제를 풀어내는 데는 영 시원찮았다. 이런 학생에게, 입시 준비를 위해서 1시간에 20개 문항을 실수 없이 풀라고 끊임없이 연습시키면 끔찍할 수밖에.

수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교과목이다. 수학에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이라면 반복학습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몰랐던 걸 알면서 얻는 성취감과 시간을 들여서 막힌 문제를 풀 때의 통쾌감이 동력이 되고 자양분이 된다. 이렇게 다른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같은 방식의 반복학습을 끊임없이 시키면, 그것을 포기해 버리는 아이들이 나온다. 창의적이고 영재성이 강한 아이들일수록 반복을 못 견디곤 한다.

시인을 꿈꾸던 허준이 학생이, 평범한 국어 과목 외에 ‘시 창작’ 또는 ‘유럽 시’ 등의 과목을 이수할 수 있었더라면 학교는 그에게 또 다른 가능성이었을지 모른다. 천천히 수학 문제를 푸는 걸 잘하던 그에게 난도는 높지만 문제 수는 3분의 1로 줄이는 선택지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입시에서도 선다형 중심의 유형 또는 적은 수의 서술형 중심 유형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안 되는가. 고교학점제는,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학습 트랙을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다. 학생이 관심 두는 특정 영역에서는 한 단계 높은 깊이 있는 학습도 가능하도록 다양성을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