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20년 서울시가 ‘신진미술인 지원 사업’으로 구매한 작품 중 전시하지 못한 채 창고에 있는 작품들. 왼쪽부터 이승호 작가의 조형 작품 ‘휴우(休憂) series-1 Liberty’, 클레버클레어 작가의 조형 작품 ‘테크니컬러 No.20’, 박윤주 작가의 뉴미디어 작품 ‘고잉곤’. 서울시청 제공

■ 두더지 리포트 - 줄줄새는 코로나 지원금 下

서울시 2년전“신진미술인 지원”
10억 투입, 작품 651점 사들여
61점은 한번도 전시못된채 방치

市 “별도 설치공간 마련못한 탓”
작가들 “역량 감안해 구입했어야”

생계곤란 없는 작가 작품도 다수
혈세 낭비 등 지적 거세질 전망

“저한텐 자식 같은 작품인데 그렇게 창고에 처박아둘 거면 도대체 왜 사간 건지 모르겠어요.”

서울시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예술인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사들였던 작품 651점 중 61점이 2년 가까이 창고에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인들 사이에선 “다음부턴 이 같은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서울시가 생계 곤란을 겪지 않는 예술인들의 작품까지 대거 사들인 상황에서, 전시장이 아닌 창고에서 빛을 못 보고 있는 작품도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문화일보 두더지(두드리고, 더 파고, 지속하고) 취재팀이 ‘서울시 신진미술인 지원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 중 미전시 작품을 출품한 작가 10명에게 연락을 취한 결과,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서울시 신진미술인 지원 사업은 지난 2020년 7월 시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예술인을 돕기 위해 약 10억 원을 들여 시각·조형 예술작가 651명의 작품을 구매한 사업이다. 시는 사들인 작품을 공공시설 등에 전시했다. 하지만 이 중 61개 작품은 구입 2년이 돼가도록 단 한 차례도 전시되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작가는 “당시 이 사업에 참여한 이유는 생계유지를 위한 목적보다는 작품 전시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며 “그런데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할 수장고에 방치돼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B 작가는 “작가들에겐 자식 같은 작품인데 서울시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전시계획을 세웠어야 한다고 본다”며 “추후 전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수장고에 계속 있었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시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작품 전시가 늦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시가 한 번도 안 된 작품은 조형 41개, 뉴미디어 20개다. 그러나 작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61×46×17.5㎝(가로×세로×높이) 크기의 조형 작품 ‘휴우 series-1 Liberty’를 출품한 이승호 작가는 “설치하기 까다로운 작품을 출품했지만, 서울시가 자신들의 전시 기획 역량을 감안해 구입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태도로 운영이 된다면 다음엔 비슷한 사업에 지원하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시는 취재가 시작된 이후,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부적합 소재라는 이유를 들어 전시하지 않았던 회화·판화 작품 21점을 최근에서야 전시했다. 당시 시가 예시로 든 부적합 소재는 음란성, 흡연, 음주 등이었다.

하지만 부적합 소재로 분류된 작품 중엔 일상 소재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예컨대 박양빈 작가가 그린 판화 작품 ‘Hwagodong no.1’은 전신주와 건물 등 일반적인 거리 풍경을 담고 있다. 강민지 작가의 사진 작품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은 벽에 달린 괘종시계와 평범한 일상 사진을 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시 계획을 지속해서 세워 미전시된 작품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