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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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를 위해 작곡했지만
문호 만초니 1주기에 초연
60세 ‘베르디 기법’ 총망라
최고의 작품은 ‘진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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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베르디는 ‘오페라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오페라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최고 걸작은 바로 ‘베르디 레퀴엠’(Messa da Requiem Op.48)이다. 베르디는 1868년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 조아치노 안토니오 로시니를 위해 특별한 ‘레퀴엠(진혼곡; 죽은 이를 위한 위령 미사곡)’을 기획했다. 이 레퀴엠은 12명의 작곡가가 공동으로 완성해 로시니 서거 1주기에 초연될 계획이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차질이 생겨 무산됐다. 베르디가 작곡한 레퀴엠의 마지막 곡 ‘리베라 메’(Libera me·나를 구원하소서) 또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책장 속에 잠들었다.

1873년 베르디는 그가 존경하던 이탈리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로 만초니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영전에 바칠 레퀴엠을 작곡하기로 결심한다. 베르디는 로시니를 위해서 써뒀던 ‘리베라 메’를 바탕으로 레퀴엠의 나머지 모든 부분을 작곡했고, 만초니의 서거 1주년을 추모해 초연하게 된다. 공연은 밀라노의 성 마르코 성당에서 베르디 자신의 지휘로 이뤄졌는데 대성공을 거뒀다. 큰 인기에 힘입어 3일 후 이탈리아 최고 극장인 스칼라 극장에서 합창 120명, 오케스트라 110명의 대규모 편성으로 다시 공연하기에 이른다.

작품엔 베르디의 죽음에 대한 사색과 깊은 신앙심이 동시에 녹아들어 있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는 애잔하고 처연한 선율로 노래하며 또한 참회의 멜로디로 인간의 나약함을 신께 고백하고 있다. 60세의 나이로 원숙기에 접어든 베르디의 작곡기법이 총망라돼 있으며 ‘오페라의 황제’다운 벨칸토풍의 멜로디가 압권인 작품이다.

베르디 레퀴엠 중 최고의 작품은 단연 ‘진노의 날’(Dies Irae, Verdi Requiem)이다. ‘모든 만물 불 속의 재가 되리라. 다윗과 시빌라의 예언대로 심판자가 내려오실 때,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몸을 떨게 되리’라는 가사처럼 매우 극적이면서도 현실감 있는 표현으로 영화의 배경 음악이나 광고 음악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곡이다.

진노의 날을 듣고 있으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그림 ‘최후의 심판’이 떠오른다. 진노의 날이 도래한 듯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들의 참담함, 그리고 두려운 존재인 신에 대한 경외감이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전합주로 폭발적으로 연주되며 합창은 최후 심판 날의 무서움을 노래한다. 공포스럽기까지 한 오케스트라와 혼란 속에 절규하는 듯한 합창의 격정이 가시면 공포스러운 탄식의 소리로 ‘심판자가 오실 때’가 노래된다.

격정적이며 사실적인 표현의 작품 성격을 빗대 당시 독일지휘자 한스 폰 뷜러는 “성직자 가운을 걸친 베르디의 최신 오페라”라고 조롱 섞인 악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음악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벨칸토의 확장과 자신의 오페라에서 구현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화성법과 대위법을 레퀴엠에 담아냄으로써 베르디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