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레트로 디깅, 시티팝 붐을 타고 26년 만에 6집 정규앨범 ‘Here We Go’를 발표한 ‘빛과 소금’의 장기호(사진 왼쪽)와 박성식(오른쪽)이 각자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미소 짓고 있다. 신창섭 기자

■26년 만에 새 앨범 발매한 2인조 밴드 ‘빛과 소금’

리메이크 잇따르며 마니아 형성
청량함 가득 신곡 ‘블루 스카이’
BTS가 소개해 해외서도 관심
“레트로 디깅 팬들 덕에 컴백…
고통 잊게하는 진통제 되고파”


‘빛과 소금’ 6집 앨범의 첫 곡 ‘Blue Sky’(블루 스카이)는 시작부터 청량하다. 깊이 있고 세련된 청량함이다. ‘It touches my heart’로 접어드는 후렴구에선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는 ‘아이오니언 음계’가 사용됐다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미 행복해진다.

‘샴푸의 요정’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등으로 기억되는 전설의 2인조 밴드 ‘빛과 소금’이 새 앨범을 냈다. 1996년 5집 ‘천국으로’ 이후 무려 26년 만이다. 1990년 데뷔 후 클래식과 화성학을 기반으로 한 퓨전 재즈 등 다양한 음악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이들은 각각 대학교수가 된 이후 음반을 내지 못했다.

그 뒤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역사의 일부로만 호명되던 이들의 음악을 끌어낸 것은 ‘시티팝’ 붐이다. 정기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까마득한 후배들이 이들 노래를 리메이크하면서, 젊은 세대는 “우리나라에 이런 가수가 있었다니”라고 탄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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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 못 한 일이에요. 기분 좋죠. 지금은 음원을 ‘찾아 듣는’ 시대가 됐잖아요. 오히려 우리 음악이 발굴되고 알려지기 좋은 시대가 된 것 같아요.”(박성식)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빛과 소금’의 장기호는 본인이 만든 신곡 ‘블루 스카이’를 두고 “혹시 어렵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빛과 소금 음악이 하도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는 답에 그는 안도했다.

“‘빛과 소금’ 1집을 냈을 때 언론들이 ‘음악이 너무 어렵다’고 평가했어요. ‘블루 스카이’가 ‘샴푸의 요정’보다 더 어렵게 만든 곡인데 어렵지 않다면 그만큼 대중의 음악적 패러다임도 바뀌었다는 뜻이네요.”(장기호)

‘빛과 소금’은 1980∼1990년대 김현식, 시인과 촌장, 신촌블루스, 김현철 등을 제작한 전설적인 레이블 ‘동아기획’ 소속이다. 당시 ‘빛과 소금’은 “어렵다”는 평가에 부딪혀 다른 가수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으나 자신들의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동아기획에서 유일하게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게 우리라고 하더라고요. ‘음악으로 돈 벌기엔 틀렸구나’ 싶었죠. 그래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지만 우리 음악을 좋아해주는 팬분들이 계시다는 게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큰 힘이 된 거죠.”(박성식)

“당시엔 인기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대중에 크게 좌지우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저희가 정규 앨범까지 내게 된 것은 젊은이들 사이에 분 ‘시티팝’ 바람과 ‘LP붐’ 덕이에요. 레트로 디깅(digging·발굴) 감성이 모이면서 우리를 게으르게 놔두지 않은 거죠. 1집을 낼 때보다 지금이 더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장기호)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번 앨범은 ‘빛과 소금다운’ 곡들로 꽉 차있다. 선법 작곡의 묘미를 가득 살린 ‘블루 스카이’부터 재지(jazzy)한 선율로 이별을 노래하는 ‘오늘까지만’, 리듬감 있는 재즈의 정석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필라마네’ 등은 이들이 한국 음악계에 ‘퓨전 재즈’ 바람을 일으킨 26년 전을 회상케 한다. ‘오늘까지만’에서는 나아가 빛과 소금 음악 사상 처음으로 랩이 삽입됐는데, 래퍼 서출구는 “‘빛과 소금’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또 다음 단계로 진보한 앨범”이라며 “이 같은 앨범에 참여하게 돼 큰 영광”이라고 전했다.

‘시티팝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시티팝’만으로 이들의 음악을 정의하기엔 부족하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 장르는 그냥 ‘빛과 소금’인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을 듣고 ‘아, 역시 빛과 소금이다’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대성공이죠. 아픈 환자에게 진통제를 주듯, 우리 음악이 세상 속 시름과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할 수 있는 음악이길 바랍니다.”(박성식)

요즘 ‘블루 스카이’ 뮤직비디오에는 영어, 일본어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일 방탄소년단의 RM이 이번 앨범을 SNS에 올린 후 해외 팬들까지 유입되면서다. 다행히 ‘블루 스카이’는 영어와 한국어 버전이 둘 다 있다. 장기호는 “원래 영어 버전만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답답했지 않나. 이제 좀 벗어나서 푸른 하늘을 날 듯 살아보자는 메시지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호서대 교수인 박성식의 안식년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 활동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그때까지 활동하겠어요? 이제 다음 앨범 작업해야죠.”(박성식)

“지금부터 작업 시작해야 돼요.”(장기호)

살아있는 레전드의 26년 만의 신보, 그리고 벌써 기대되는 다음 앨범까지. ‘레트로 디깅족’들의 성과가 아주 뜻깊다. 박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