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04년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가족과 함께. 앞줄 왼쪽 두 번째가 고 김말련(세례명 마리아 막달레나) 씨. 필자 제공

■ 그립습니다 - 김말련(1922∼2006)

‘1년 중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노래하면서 가톨릭교회는 오월을 ‘성모성월’(聖母聖月)로 지낸다. 그분 성모 마리아는 영광의 어머니라기보다 고통의 어머니로 더 많이 기억된다. 편태(鞭笞)의 극심한 고통을 보여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노래한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의 여운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의 어머니들 가운데 고통 없이 살아가신 이 누구이시랴만, 나를 낳아 길러주시고 아홉 자녀 저마다 제 길을 걸어가게 해주신 다음, 16년 전 봄에 훌쩍 떠나가신 우리 어머니 또한 어렵사리 84년 생애를 살아낸 분이다.

내가 중학생도 채 되기 전이었을까. 학교에 갔다 왔을 때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어머니가 짐을 챙겨 들고 급히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가서 어렵게, 어렵게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대가족 집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중립’을 지키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서 친정으로 가고자 집을 나서신 것이었고, 이런 일이 두 번쯤 있었다.

팔남매의 장남인 아버지와 혼인하신 어머니는 시부모님과 시외조모님, 시동생 둘, 시누이 둘, 그리고 당신의 ‘구남매’ 중 이때가 여섯째까지 태어났을 즈음이었고, 우리 민요의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고추장보다 더 매운 시집살이’를 하고 사셨음이 분명했다. 부엌일을 거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아침마다 도시락을 대여섯 개씩 싸줘야 하는 번거로운 고달픔이라니!

올가을 추석 무렵이면 어머니가 태어나신 지 100년이 된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마음 모아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를 하자면서, 그동안 잊고 지내 온 구남매 카페 ‘카리타스 프라테르나’(Caritas Fraterna·우애)를 살펴봤더니 ‘어머니의 기도’에 이웃사랑이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됐다.

‘사랑하올 예수님,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주님 안에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 구남매 다 각자 하는 일 불행 없이 건강한 몸으로 살게 하소서. 또 저의 장부도 건강을 주시고 모든 어려운 일에 잘 참고 살게 하소서. 그리고 시어머님이나 친정어머님 항상 성총(聖寵) 지위에 사시다가 주님께서 데려가소서. 그리고 저의 형제들에게도 평화를 주시고요. 저의 시동생 바오로 가정과 요셉 가정도 주님께서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평화도 주시고요. 이 밖에 모든 것도 다 들어 주시옵소서. 앞으로는 잘 참고 살겠습니다.’

만 열여덟 살이 채 되기 전에 내가 서울로 유학 오고 나서 하나둘 아우들이 서울로 올라왔고, 힘겨운 도시의 삶이 분별없이 펼쳐졌다. 어쩌다가 더러는 빗나가기라도 할 때면 우리 중에 누군가는 어머니의 경고 친서를 받아야 했다. 1960∼1970년대 권위주의 시대 집권자가 당료나 관료에게 말이나 행동이 못마땅했을 경우 경고하는 의미로 친서를 써서 보내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서울의 우리 형제들은 고향에서 어머니가 연필이나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보내시는 편지를 ‘눈물의 경고 친서’라고 불렀다. 이제 다시 어머니와 그분의 육필 경고 친서가 그립기만 하다.

최홍준(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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