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소매치기범에게 저승사자였던 영원한 강력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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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황규인(1950∼2007)

얼마 전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를 노려 지하철 구간을 돌며 승객들을 상대로 소매치기를 일삼은 전문 소매치기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요즘 길에서 열린 핸드백이나 가방을 뒤나 옆으로 어깨에 메고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며 걷는 여성들을 자주 본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더라도 마찬가지다. 또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 카트 안에 핸드백이나 지갑을 놓아둔 채 물건을 고르는 고객이 있다. 이런 경우 소매치기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소매치기’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이 있다. 과거 청량리경찰서의 ‘소매치기 전문수사관’이었던 고 황규인 형사다. 그는 30년 동안 수사형사의 외길을 걸었다. 특히 ‘소매치기 전문수사관’으로서의 활약상은 국내 1인자라는 명성을 쌓게 했다. 전국의 소매치기범들이 퇴직하기를 기다리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과로와 스트레스로 기존 질환이 급격하게 악화돼 안타깝게도 2007년 만 57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 소매치기 조직들이 자축연을 열었다는 소식에 경찰 동료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었다.

누구나 비웃곤 하는 ‘정의’라는 단어를 후배들에게 주입시키던 선배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나에게 경찰은 승진보다 범죄자를 많이 잡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경찰은 강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약자에겐 더욱 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황소처럼 걸어가라고 했다. 범죄꾼들한테는 저승사자로 통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정다감하고 얘기도 잘 들어주며 따뜻하게 챙겨주는 누구보다 정이 많은 선배였다.

그는 살아생전 “박봉과 고된 업무, 승진상의 어려움을 이겨온 것은 치안의 최선봉에 서 있다는 사명감과 ‘형사’란 직업의 자부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또 “형사들이야말로 마지막 충성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충성심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을 만큼 수사환경이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국민의 인권의식과 치안서비스 만족 기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가는데, 치안 역량은 예전 그대로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치안 수요와 공급 간의 드넓은 간격을 지금까지는 오로지 형사들이 몸으로 때우고 충성심으로 메꿔 왔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내 나이면 경감이 됐어야 하는 나이지만 업무에 충실한 것으로 만족한다”며 “정년퇴직하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한 진정한 형사였다고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경찰의 꽃으로 불리던 외근 수사형사가 3D 부서로 전락한 지 오래다. 범죄는 날이 갈수록 지능화·기동화·광역화·다양화되고 있으며, 치안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범죄가 점차 흉포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치안의 최일선 베테랑 형사들이 현장을 떠났고, 또 떠나고 싶어 한다. 강력계 형사 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들에게 존중과 예우에 부족함은 없었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나는 정년퇴직하기 전에 우리들의 영원한 강력형사, 고 황규인 선배의 영전에 명예 경감증을 올리고자 백방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황 선배한테 정말 미안하다.

규인이형, 못난 후배가 살고 있는 이곳은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온갖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지는 4월입니다. 형님이 계시는 그곳은 어떤가요. 형님! 오늘따라 범죄자들의 적으로 살았던 당신이 많이 그립습니다.

문영호 ㈜천신CSK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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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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