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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김금순(1931∼2021)

오늘 점심에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30리 산길을 걸어 읍내에 가서 오일장 구경을 시켜주셨습니다. 처음 보는 포목점, 옷가게, 대장간, 어물전 등을 두루두루 데리고 다니다가 차력사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콜라병을 깨트리는 길목에서는 호기심이 많은 나이라 안 된다며 제 두 눈을 두 손으로 가리고 못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터 외진 곳에 임시로 쳐 놓은 포장 집으로 저를 데리고 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아줌마, 국밥 한 그릇 많이 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잠시 후 뚝배기에 가득 담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아, 많이 먹어라”라고 등을 두들겨 주시고 밖으로 나가 제가 국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힘겹게 국밥 한 그릇을 다 먹은 저는 밖에 계시는 어머니 앞으로 다가가 “아이 배불러”라며 볼록 나온 배를 만졌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빙그레 웃고 흐뭇해하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어머니는 점심을 안 드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철이 든 후 진실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종갓집에 시집와 딸만 네 명을 낳고 죄인이 돼 하늘도 마음대로 쳐다보지 못하다가 저를 낳고 비로소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가네 종갓집 대를 이어야 하는 사명이 있는데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4명을 낳은 게 어머니 죄인 양 분노가 극에 달한 할아버지는 모래 한 줌을 들고 와 산모가 먹을 미역국에 부어 버렸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딸을 낳고 또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미역국도 먹지 못하고 눈물만 한없이 흘렸다고 합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넷째 막내 누나를 딸은 그만 낳으라고 ‘딸고마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딸고마니 효과를 봤는지 다섯째로 아들인 저를 낳고 쫓겨날 위기를 면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이 있는 어머니는 당신은 굶주리면서도 자식에게는 국밥을 배불리 먹게 하셨는데, 무정하게도 김금순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잡수시게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스럽습니다. 지난번에는 국밥을 먹다가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어 더 국밥을 먹지 못하고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지금은 국밥을 맛있게 먹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만 가면 말을 하지 않아도 뚝배기에 국밥을 가득가득 담아 줍니다. 제가 국밥을 맛있게 먹어야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들 한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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