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NHK 드라마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포스터. NHK 캡처

■ 김선영 기자의 오후에 읽는 도쿄

NHK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무성애도 성소수자 범주 포용

“연애 없는 행복을 꼭 붙잡아”
극중 부모 대사 온라인서 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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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꼭 로맨스를 그려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무성애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를 지상파 최초로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온라인매체인 버즈피드재팬은 각각 에이섹슈얼(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과 에이로맨틱(타인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인 남녀가 각자의 성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사는 서사를 그린 드라마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然せぬふたり)’의 제작진을 인터뷰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우 기시이 유키노(岸井ゆきの)와 다카하시 잇세이(高橋一生)가 연기한 두 주인공은 성적 지향을 숨기는 삶을 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서로를 만나게 된다. 일로 만난 ‘공적 관계’였던 두 사람은 연애 감정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키스도 섹스도 하고 싶지 않은 채 망설이던 나날을 보내온 것에 깊이 공감한다. 결국 이들은 연애 감정을 뺀 ‘임시’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다.

사랑과 섹스가 없는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은 무성애자가 일상에서 느끼는 소외감, 가족·친구들에게 커밍아웃(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 할지에 대한 고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적 정체성을 폭로당하는 ‘아우팅’ 문제를 공유한다. 젊은 남녀가 같이 살게 되자 주위에서는 두 사람을 ‘연인 사이’라고 부른다. 이에 무성애적 성적 지향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이들은 용기를 내 본인들의 조금은 특별한 관계에 대해 가족·지인·동료들에게 고백하기 시작한다.

드라마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등장은 그동안 연애·결혼하지 않는 청춘을 ‘초식남(이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이나 관심 분야에 몰두하는 남자)’ ‘건어물녀(연애세포가 건어물처럼 메말라 연애를 포기한 여성)’로 묘사해왔던 일본 사회가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에 대한 포용과 관심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현실고증을 위해 무성애자 3명도 제작에 참여했다. 드라마의 각본을 쓴 요시다 에리카(吉田惠里香) 작가는 “정상담론을 중시하는 세상이 ‘보통’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위화감을 느껴왔다”며 “소수자의 시선을 다룬 드라마를 통해 일본 사회가 한 걸음 내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문제작’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잔잔하지만 뜨겁다. 딸이 연애·결혼·출산을 통해 ‘보통의 행복’을 누리기를 바랐던 여주인공 사쿠코의 어머니가 결국 딸에게 “엄마는 그저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연애 없는 행복을 꼭 붙잡아”라고 말한 대사가 온라인상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결국 사쿠코는 이렇게 독백한다. “내 인생에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 나의 행복을 정하는 사람도 오직 나 자신뿐이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