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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갈등·가정불화·보복…
화 못참고 인화 물질까지 동원
강릉·동해 산불도 방화가 원인
“주목도 높이려 극단적인 수단”

강원 강릉 옥계와 동해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주민들에게 앙심을 품은 남성의 방화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각종 폭발물, 인화성 물질을 동원하는 ‘분노 방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5년간 방화 범죄자 6582명 중 3597명이 분노를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폭발성 물건을 동원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천 소사경찰서는 경기 부천시의 한 빌라에서 부탄가스를 터뜨리려 한 이모(48) 씨를 폭발성물건파열죄(미수) 혐의로 지난달 3일 구속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월 28일 오후 9시쯤 주거지인 빌라 2층 집 안에서 부탄가스 3개에 구멍을 내 빌라 일부를 폭파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위층에 살던 주민과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었고, 이에 화가 나 범행을 시도했다. 이 씨는 범행 전 인근 슈퍼마켓에서 부탄가스 총 12개를 미리 구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휘발유, 시너 등 인화성 물질도 분노 범죄의 수단이 되고 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3단독(전상범 판사)은 현존건조물방화예비,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 A 씨에게 지난해 12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8월 22일 오후 휘발유와 오일을 섞은 혼합유 4ℓ와 라이터 등을 미리 준비해 자신의 내연녀가 사는 전북 익산시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 등을 받는다. 내연녀가 다른 남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A 씨는 술을 마신 뒤 내연녀의 집으로 찾아가 “다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며 기름을 거실 바닥과 TV 등에 뿌렸다. 제주에서는 남성 B(50) 씨가 조카들이 운영하는 회사를 찾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감을 줬다는 이유로 미리 구입한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년)간 방화범죄자는 총 6582명으로 한 해 평균 1316명가량 발생했다. 범죄자 6582명 중 3597명(54.6%)은 분노로 인한 우발적 범행, 현실불만, 가정불화, 보복 심리 등이 범행 동기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느끼는 피해 의식을 표출하기 위해 한 번에 사회적 이슈를 고조시키거나 충격을 주고 싶을 때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려는 심리가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범행으로 인한 피해 결과와 주목도를 높일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등 범행 수법이 진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